두 번째 전시

진행형 입방체, 《그을린 시대, 사람들》

 

노순택 작가의 <그을린 노동의 달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층의 역사관 안쪽에 가면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그을린 시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노순택, 홍진훤 작가의 작품이며, 하나의 달력과 두 개의 2채널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과 영상, 그리고 CG는 그 시대의 감각을 대신 전하며,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외환위기를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글. 서영걸(독립기획자)

  • 붉은 글씨로 남은 삶들

  • 노순택 작가의 <그을린 노동의 달력>은 1997년의 월력에 근대부터 2020년 4월에 이르기까지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의 이름과 죽음의 이유를 붉은 글씨로 해당 일시에 기록했다. 너무 많은 죽음은 가까이서 눈을 부릅뜨지 않는 한 쉽게 읽을 수 없는 지경이다. 작가는 “이 죽음들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2채널 영상은 각각 노순택, 홍진훤 작가의 사진과 서영걸 작가의 CG로 만들었다. 외환위기 당시 20대와 10대 후반이던 두 작가가 겪고 목격한 20여 년은 노동과 개발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CG는 박물관에서 제공한 외환위기 구술 녹취의 주요 텍스트와 음성을 조응하도록 시각화했다. 전체 편집은 홍진훤 작가가 맡았다.

      

  • 외환위기, 불안의 시대

  • 1997년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외환위기라 하면 은행을 필두로 이어진 기업들의 줄도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 온 국민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펼쳤던 ‘금 모으기 운동’, ‘Buy the Korea’ 등의 슬로건이 떠오를 것이다. 일종의 상징 증거라 할 수 있는 일련의 기록물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외환위기를 과거의 한 사건으로 박제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위기 이후 국제 금융 질서에 안착한 한국의 실상은 강제 편입된, 지표상으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듯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그로 인한 만성적인 고용불안이 존재한다.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파견직과 비정규직이 채웠다. 효율성은 수익성을 담보하며, 무한 경쟁에서의 추락은 실패한 인생과 같은 말이 되었다. 한때 회자하던 ‘88만 원 세대’, ‘삼포 세대’ 등 경제활동에 막 진입하는 청년세대를 호명하는 단어에서 두 작가도 자유롭지 않았다. 이들의 사진이 노동과 개발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끝나지 않은 입방체

  • 두 작가에게 외환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시에 사용한 사진이나 자료가 1997년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상적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의 사료 개념과는 다르다. 5년 전, 당시 전시과에 근무 중이던 김수진 학예연구관(현 교육과장)으로부터 전시 방향과 함께 ‘이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미술관에서 통용되던 시각적 문법을 박물관에, 그것도 역사관에 사용한다는 것이 그때는 매우 이례적인 시도였다.

    외환위기는 몇 가지 명징한 ‘증거’로 설명하기에 당시가 대혼란 그 자체였고, 그 결과는 경계선 없는 무한의 입방체에 가까웠다.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이 미술에서는 가능하다.

    그때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본 전시는 의도치 않은 생경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명료하지 않은 파편적 증거로서의 사진들 사이 비어 있는 틈을 메꾸는 것은 관객들의 ‘역사적 상상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외환위기가 과거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그 나쁜 결과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면 이를 해결할 사람은 동시대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 노순택 작가의 <그을린 노동의 달력 중 10월>.
    ▲ 홍진훤 작가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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