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일찍 전하다
1945년 8월, <미국의 소리>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특별 방송해 해방의 순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방송 녹음은 미국 국가문서기록관리청에 보존되어 있으며, 당시 방송은 일본 항복과 광복을 실감 나게 전달한다.
포츠담 선언과 연합국의 압박 속에 일본은 결국 항복을 수용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가 인사들은 해방 소식을 기쁘게 맞았다
글. 장영민(상지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부 명예교수)
미국 전쟁정보국(Office of War Information) 소속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¹⁾ 2차 세계대전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미국과 중국 등 연합국의 한국어 방송 활동은 박기성의 〈태평양 전시하의 해외 독립운동 방송체제〉 (《방송학연구》 5, 한국방송학회, 1994)를 참고. 1945년 8월 15일 오전 8시부터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이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 무조건 항복하기로 했다는 중대 소식을 방송했다. 이 특별 방송은 영어와 네덜란드어 등 서구 언어 외에도 한국어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9개 주요 언어로 7차례에 걸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반복했다. 이런 역사적 순간은 녹음테이프에 고스란히 담겨서 미국 메릴랜드주의 국가문서기록관리청(NARA Ⅱ)에 보존되어 있다.²⁾ Sound Recordings Relating to World War II, 1942-1946, Local ID, 208-5-r1 ~ 208-5-r7, RG 208, Records of the Office of War Information, 1926~1951. 3) ‘八十年前, 日本投降消息从重庆传出’, <重庆日报> , 2025년 8월 11일, 中共重庆市纪律检查委员会・重庆市监察委员会 인터넷 사이트. 4) 〈西京日報〉, 1945년 8월 12일, 13일 자, 「한국광복군」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13, 국사편찬위원회, 2006, 400~401쪽. 해외 방송을 했던 영국, 중국, 소련 등이 일본 패망 소식을 녹음테이프에도 기록했는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미국 아카이브 녹음테이프가 유일하게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 3명의 남성 아나운서가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원고를 힘차게 낭독하고, 이어 남녀의 애국가 합창으로 끝나는 당시 방송을 들으면 마치 그때 그 자리에서 광복을 맞이했던 듯이 감격스럽다.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핵심이었다. 또한 카이로 회담의 결의를 이행하고, 일본 영토는 4개 섬으로 한정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해방을 확실히 보장하는 국제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선언을 무시하다가 원자폭탄 두 발을 맞고, 소련이 참전하자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스위스와 스웨덴을 통해서 미국, 중국, 소련 등 연합국에 전달했고, 그 사실을 알리는 일본 방송국의 단파를 미국 서부에서도 수신했다.
10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의 소리>는 일본이 선언 수용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즉각 전파했다. 당일 밤 10시 중국 중경의 <신화일보(新華日報)>는 좀 앞질러서 ‘일본무조건투항’ 호외를 발행했고,³⁾ 중경방송과 중국국제방송국도 속보로 보도했다. 시찰차 산시성에 갔던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일본 항복 소식을 듣고 “한국은 영원히 독립해방 자유행복의 나라로 남을 것”을 보증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감사하며 40여 년의 투쟁을 회상하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는 서면담화를 12일에 발표했고, 국민정부 장개석 주석에게도 축전을 보냈다.⁴⁾ 일본 패망을 예상하며 해외 정보에 귀 기울이던 여운형 등 국내 인사들도 일왕의 항복 방송 며칠 전부터 연합국의 해외 단파방송을 통해서 일본이 패망하고 민족이 해방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미국과 중국 등 연합국의 한국어 방송 활동은 박기성의 〈태평양 전시하의 해외 독립운동 방송체제〉 (《방송학연구》 5, 한국방송학회, 1994)를 참고.
2)Sound Recordings Relating to World War II, 1942-1946, Local ID, 208-5-r1 ~ 208-5-r7, RG 208, Records of the Office of War Information, 1926~1951.
3) ‘八十年前, 日本投降消息从重庆传出’, <重庆日报> , 2025년 8월 11일, 中共重庆市纪律检查委员会・重庆市监察委员会 인터넷 사이트.
4)〈西京日報〉, 1945년 8월 12일, 13일 자, 「한국광복군」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13, 국사편찬위원회, 2006, 400~401쪽.
사실 8월 15일 오전에 나온 <미국의 소리> 방송 외에도 포츠담 회담의 무조건 항복 조건을 둘러싸고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던 상황은 8월 10일 이후 각국의 해외방송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미국의 소리>만 해도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한층 강하게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원자폭탄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12일에도 미국 국무부 번즈 장관이 일본이 붙인 천황제 유지 조건은 수락할 수 없다는 연합국 공동 결의를 전달한 사실이 해외 단파방송을 통해서 확산했다. 이 밖에도 연합국 해외 방송은 일본의 투항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향후 대일본정책 등을 제시했다. 이런 방송도 일부는 녹음테이프로 남아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8월 16일 자 ‘왜적항복의 교섭경과’ 기사를 보면, 재미교포도 뉴스를 줄곧 접했던 것 같다. 마침내 14일 저녁 7시 백악관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며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일본의 외교 문서를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미국의 소리>는 특별 방송으로 일본의 투항을 전 세계에 전달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히로히토 일왕은 15일 정오에 재생할 항복 방송을 녹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