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수 관장
한수 관장은 고고학을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을 거쳐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여정’을 걸어왔다.
2023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부임한 이후에는 우리 근현대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관람객이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박물관을 새롭게 만들어가고자 하는한수 관장.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 쉽고,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그를 <역사공감>에서 만나보았다.
* 2025년 <역사공감>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는 신규 인터뷰 코너 ‘박물관 사람들’을 새롭게 기획하였습니다.
박물관을 이끌고, 가꾸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박물관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관장으로 부임하신 지 2년이 되어갑니다. 소감을 여쭙고 싶습니다.
25년 넘게 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만, 처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이라고 느꼈습니다. 근현대사박물관은 뭐랄까.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된 역사가 아닌, 해방 이후의 짧은 시간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남달랐습니다.
다른 나라라면 몇 세기에 걸쳐 겪어야 했던 일들을 우리는 굉장히 단기간에 경험했기에 그걸 어떻게 관람객에게 잘 전달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이 곧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을 알리는 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의 매력을 어떻게 관람객에게 전달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 관람객이 접하지 못했던 다채롭고 재미있는 전시나 교육 활동을 구상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작년 초에 선보였던 《목돈의 꿈》이라는 전시를 예로 들어볼까요. 근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목돈’을 한 번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산업화, IMF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어떻게 돈을 모으고, 벌고, 쓰며, 그 안에 인생을 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죠. ‘내 이야기 같아 감동적이었다’라고 소감을 남기신 관람객도 많았어요. 이처럼 우리 박물관에서는 정치·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슈를 넘어, 나의 삶과 가까운 곳에 있는 어떠한 것도 훌륭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말이죠.
최근 진행한 전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올 3월까지 전시했던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전 《안중근 書》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이후 사형 선고를 받고 뤼순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그곳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무려 200여 점에 달하는 글씨를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그때 주위 사람들한테 써준 안중근 의사의 유묵들을 한데 모아 그의 삶과 사상을 다시 재구성하고자 했으며, 관람객들도 함께 공감하기를 바랐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께서 동양평화를 위한 구상을 담아 쓴 <동양평화론>의 친필 원본을 아직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물론 당시 동북아 정세에 대한 식견과 미래 구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인데, 등사본과 번역본만이 전해지고 있죠. 친필본이 아마 일본 외무성에 소장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공개하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아무래도 특별한 전시를 준비 중이실 것 같은데, 그 부분을 소개해 주세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8월, 박물관 전 층에 태극기를 전시할 계획입니다. 보존해야 하는 국보급 태극기를 모아 전시하는 공간도 있고, 태극기의 80년 역사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공간도 예정돼 있습니다. 가령 독립운동할 때 사용했던 태극기,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응원 도구로 쓰였던 태극기 등을 다양하게 살펴보며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감정이 담긴 태극기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전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국가기록원이 함께 《기록》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전을 준비해 5월 1일 개막했습니다. 역사적 기록물 속에 포착되는 보편적 정서를 중심으로, 광복 80주년에 이르는 역사를 드러내고 공동체의 기억임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전시물 관람으로 끝나지 않고, 내가 나를 기록해 가며 전시를 보는 쌍방향 소통 장치를 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결과를 알 수 있는 즐거운 체험 전시를 마련했으니 꼭 방문해서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외에도 국립합창단과 연계한 공연이나 협업 공동 전시, 체험 놀이 등도 연말까지 이어 나가려고 하니 관심 가져주세요.
올해 관람객들은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계획도 있으실까요.
지역마다 고유 특징을 주제로 한 근현대사박물관들을 세우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광역시에는 ‘민주화’를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 경상북도 구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가 생겼던 만큼 ‘산업화’를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근현대사를 더 자세하게 알리고 싶습니다. 올해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 계획이 성사되면서울에만 편중된 박물관의 방문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고, 국민 모두에게 근현대사를 알릴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식지 <역사공감>이 올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을 담고자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면 좋을까요.
근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유일한 정기간행물인 만큼 박물관 관련 전문가, 일반 관람객 모두 관심을 가질 만한 글과 사진이 담겼으면 합니다. 또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지 못하는 지역의 근현대사박물관도 소개하며 지역 방문을 유도했으면 합니다. 지역마다 작지만 우수한 근현대사박물관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에는 관람객이 모두 퇴장하고 난 후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사연구나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부터 보안, 환경, 안내 등 각자 위치에서 노력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어보는 그런 페이지도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근현대사가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인식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사에는 수많은 흥미진진한 우리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우리 곁의 부모나 조부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떠한 선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일례로 어느 어르신이 사흘 동안 계속해서 박물관에 방문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유를 여쭸더니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돌아가셨는데, 그 시대를 알고 싶고 경험해 보고 싶어 방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그때의 전시를 접하며 기억을 떠올렸고 공감하셨던 거죠. 젊은 친구들한테 근현대사는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자신이 겪은 시간 역시 역사가 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올 테니 근현대사를 너무 멀게 느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