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역사를 수집하다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수증(受贈)은 단순히 자료만이 아니라 자료에 깃든 혹은 기증자의 삶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함께 수집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소개할 기증자는 최달용 변리사이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그는 일본 전문 국제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료를 수집해 왔다.
글. 이경순(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 학예연구사
그가 자료 수집을 하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일본에 단기 기술 연수를 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려운 때였다. 해외 첫 경험이라 모든 것이 신기해서 도쿄 현지에서 시간 있을 때마다 아이디어 제품을 수집했다. 당시에는 전화통신기기, 오디오, 비디오, 카메라, 시계 등 주로 전자제품을 수집했다. 그의 사무실 2층에 올라가 보면 갖가지 수집 자료와 함께 고장 난 컴퓨터 전원공급장치(Power Supply)를 재활용해 소리와 영상 등으로 재탄생시킨 신기한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뚜껑을 열면 기술이 보인다’를 주제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 체험학교를 여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전자제품 외에도 그동안 많은 자료를 수집하면서 여러 박물관에 꾸준히 기증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163건 837점을 기증하였다. 1910년대 벽걸이 원형시계, 각종 TV 및 캠코더, 카메라, 타자기, 한국통신 하이텔 단말기, 각종 공중전화기 등 기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 외에도 학교생활 자료, 반공방첩 교육슬라이드, 김일성 사망 및 등소평 사망 신문호외 등 신문류, 반공화보, 1970년대 제작된 <의사 안중근> 영화필름 등 다양한 자료를 기증했다.
이번에 소개할 대표 자료는 1945년 전후(태평양전쟁기~미군정기) 일본나라전수여학교(日本奈良專修女学校) 공문철(336점)이다. 기증자는 업무차 일본에 자주 출장을 다녔는데, 일본 경매에 나온 자료를 보고 중요한 자료임을 직감하고 최고가에 낙찰받았다. 이 공문철에는 1944년부터 1945년 태평양 전쟁 시기에 각 일본 정부부처 및 기관들이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 학교에 근로정신대 동원을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특히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 학생 동원에 대한 공문이 집중되어 있는데, 각 기관이 지방사무소, 여자중학교장, 근로동원서장, 시정촌장에게 여자근로정신대 할당과 편성에 대해 통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여자근로대원 입직자 명부 송부의 건 통첩(女子勤勞挺身隊員入職者名簿送付ノ件通牒)’ 공문에는 차출 정신대원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보호자 성명이 기재된 명부가 첨부되어 있다. 또 ‘1944년 제3차 여자근로정신대 출동 명령(㐧三次女子勤労挺身隊出動命令)’ 공문은 1944년 육군 관련 기관이 지역 행정기관, 학교 등 인력 동원을 하는 기관에 보낸 여자근로정신대 출동에 관한 문서로 출동 기간, 근무처, 작업 내용, 대우, 후생시설 등이 명시되어 있다.
‘1944년 공장 사업장 등 근로동원 학도용 작업복 배급에 관한 건(工場事業場等勤勞動員學徒用作業衤配給ニ関スル件)’은 나라현 경제부장이 나라전수여학교장에게 보낸 전시 동원 협조 요청 문서다. 방직공장인 일본누메아사나라공장(日本絖麻奈良工場)에 동원된 60명의 학생에게 보관된 보상금으로 작업복을 구입해 나눠주라고 요청하며, 23벌의 ‘몸빼’ 상·하의를 구입해야 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학생 동원을 대가로 학교에는 보조금이 교부된 것으로 보이는 문서도 있다. ‘1944년 나라근로정신대 결성 비용 보조금 교부에 관한 건(女子勤勞挺身隊結成費補助金交付ニ関スル件)>’에는 3차에 걸쳐 여자근로정신대를 결성한 나라전수여학교에 나라현이 1차와 3차 여자근로정신대 결성 비용에 대한 보조금으로 42엔 40전을 교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일제가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를 내선일체의 모범으로 선전한 만큼 이 자료는 당시 조선의 상황과도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지금까지 조선인에 대한 근로정신대 동원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공식문서나 자료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여자근로정신대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구술로만 전해지고 있다. 나라전수여학교 공문서는 근로정신대 동원이 주로 학교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당시 일본 각 기관이 조선의 각 학교로 보낸 근로정신대 동원 공문이나 조선 학교의 학적부 조사 등 자료 발굴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