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포스터 다운로드 원본 포스터 다운로드
우리 모두 어린이 포스터
「목돈의 꿈」 특별전 재테크로 본 한국현대사 특별전 “Dream of Big Savings” Special Exhibition Household Finance in Korean Contemporary History

전시기간 : 2023. 3. 3. (금) - 2023. 6. 22.(목)

장 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

  • 관람시간: 10:00 ~ 18:00 (수, 토: 10:00~21:00)
  • 관람문의 : 02-3703-9200

전시를 열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현대인의 최대 관심사로 손꼽히는 ‘자산 축적’을 주제로 「목돈의 꿈: 재테크로 본 한국현대사」 를 개최합니다.

오늘날에는 개개인이 가진 돈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만 거슬러 올라가도 자산을 축적하는 목적이나 방식이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전시는 목돈 마련의 꿈을 이루고자 애쓴 대한민국 국민들의 궤적을 따라갑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예나 지금이나 목돈은 나와 가족의 보다 나은 미래 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큰일에 대비하고자 차곡차곡 모으는 여윳돈의 의미가 컸습니다. 그 여윳돈은 여유가 있어 모은 것이 아니라 소비를 줄이고 보다 나은 재테크 방법을 찾아 이뤄낸 성과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부지런히 모은 저축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과감한 투자는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목돈 마련의 꿈은 문명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개인과 가계를 넘어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했던 자산 축적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번 전시가 지혜로운 경제생활을 위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프롤로그> 얼마면 돼?

여러분에게는 목돈이 있습니까? 얼마면 목돈이라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한데 목돈 모으기는 사치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테크로 얼마의 이윤을 챙겼다는 사람들의 후일담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사랑마저도 돈으로 사버리겠다는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사전적으로 ‘한몫이 될 만한, 비교적 많은 돈’을 목돈이라고 합니다.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얼마 정도라야 목돈이라 할 수 있는지,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인지, 남들은 얼마나 모으고 있는지 도무지 잘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가능하면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불리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목돈의 꿈’도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가족 병원비 등 생활 안정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목돈을 마련하는 경향이 짙었다면 근래에는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부동산이나 주식 또는 그 밖의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목돈을 만들고 키우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얼마면 돼?’는 결국 ‘우리는 왜 목돈을 모으는가?’와 같은 선상의 질문입니다. 이유가 있고 목표가 분명하다면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지혜롭게 경제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 성장을 이뤄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1 목돈이 생겼다, 숨길까 소문낼까, 당신의 선택은?
현금 사용이 현저히 줄고 카드나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간편결제 등의 지불 방식이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월급이든 사업소득이든 은행계좌로 입금되는 것이 일순위이고 여차하여 현금이 생기더라도 일단 계좌에 넣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현금 없는 버스’가 정착된 것은 물론이고 붕어빵도 현금 없이 계좌 이체로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은행으로 상징되는 근대적 의미의 금융기관이 도입된 것이 개항 이후, 실제 우리 국민들이 유의미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광복 이후였습니다. 그럼 불과 반세기 전 사람들, 오늘날 70대 이상의 국민들은 은행 거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돈을 모아본 경험이 있다는 말인데, 은행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돈을 모았을까요?
근대적 의미의 금융기관이 생기기 전 사람들은 돈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자원이 생기면 누군가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곳에, 찾을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도록 잘 보관해야 했습니다.
돈이나 귀중품을 땅에 묻어놓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집에 도둑이 들거나 불이 나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보관한다기보다는 숨기는 게 우선이었달까요? 돈깨나 있는 집에서는 금고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잠금장치가 있는 데다 금고 자체에 장식적인 효과가 있어 금고는 부를 자랑하기에도 좋은 아이템이었습니다. 숨기는 것보다 소문내는 게 자산을 보호하는 데 더 효과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02 왜 운수 좋은 날을 ‘계 탄 날’이라고 할까?
산업화 이전 대다수의 국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던 시절에는 서로서로 힘든 일을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 상부상조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근대적 금융기관이 생기기 전 ‘계(契)’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 목돈을 마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오래 알고 지내 신뢰가 끈끈한 사람들끼리 서로 돈을 모아 융통한 것이 계입니다. 구성원들이 일정 금액을 주기적으로 납부하는데, 한 번 납부할 때마다 모인 곗돈을 정해진 순번에 따라 지급받는 방식입니다. 순번이 빠른 사람은 빨리 목돈을 얻게 되지만 이후 계속 이자를 더해 납부를 해야 합니다. 순번이 늦은 사람은 앞서 곗돈을 받은 사람들이 이자를 보태 낸 금액을 수령하게 되니 자신이 낸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수령하게 됩니다.
계주나 앞 순번 계원이 곗돈을 받고 잠적하는 일이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 소재가 될 만큼 잦았습니다. 곗돈 사기가 진화하여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돌려막기’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는 더욱 교묘히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흔히 운수 좋은 날 ‘계 탔다’ 혹은 ‘계 탄 날’이라 표현하는 데는 바라고 바라던 목돈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과 함께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무탈하게 곗돈을 받은 안도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곗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운이 좋다고 할 만큼 운 나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03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평생 편히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을까요? 확률은 낮지만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복권 구입이 아닐까 합니다. 복권은 투기나 도박과 달리 소액으로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게 합니다. 공공주택 기금 마련을 위한 주택복권부터 올림픽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 복권, 그리고 오늘날의 로또까지 우리나라 복권제도는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고, 수익금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이기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완전히 돈을 날린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복권 구매에 부담을 덜어줍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욕조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보다 열 배 더 희박하고,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두 배나 더 힘든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권은 일종의 확률 상호부금입니다. 그만큼 당첨 확률이 낮은데도 평생에 걸쳐 매주 복권을 산다면 복권 구입비만 모아도 적은 돈은 아닐 테지만 1등에 당첨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
04 아끼면 정말 잘살 수 있나요?
정부는 1950년대 전반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물자 부족 속에서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자 저축을 장려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서는 국가 주도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근검절약과 더불어 저축을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저축은 개인과 가계가 단순히 목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의 동력으로 의미를 더하게 됩니다.
1960~70년대 전국가적으로 저축운동이 전개되었고, 직장은 물론 지역별로 저축조합이 결성되어 매월 일정액 이상을 저축하도록 하였습니다. 강제저축을 통해 경제개발 재원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축의 의미는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변해갔지요. 1964년에 제정된 ‘저축의 날’은 투자와 소비를 장려하여 내수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2016년부터 ‘금융의 날’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저축에 대한 사회적 의미가 변화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05 이자만으로는 아쉬운데 더 보장받을 수는 없을까?
아무래도 저축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우리 삶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불쑥불쑥 생기니까요. 그리하여 내 집 마련이나 자녀 학비와 달리 언제 닥칠지 모를 재해나 각종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해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돈을 적립해두었다가 손해가 발생했을 때 일정 금액을 보상받는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바로 보험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저축성 보험이 유독 발달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장성 보험은 보험 기간 중에 발생하는 사고나 질병에 대해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으로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하고 해지 시에는 납부한 보험료 중 일부분만 돌려받습니다. 반면 저축성 보험은 보장과 함께 보험 기간이 모두 지났을 때 납부한 보험료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대신 보험료가 비싸 목돈 또는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0년대까지 꽤 인기 있었던 교육보험이 대표적인 저축성 보험입니다. 공적연금과 복지제도가 발달하게 되면서 지금은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06 내 집 마련, 언제면 가능할까?
2021년에 실시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내 집 마련까지 14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07 월세냐 전세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 소유의 집이 없으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죠? 다른 사람 소유의 집이나 방을 빌려서 살게 됩니다. 빌리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해진 기간마다 대개는 월 단위로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월세’로 주택을 빌려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주택임대차 제도가 있으니 바로 ‘전세’입니다.
일제의 수탈에 이어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나라 재건과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주택난을 겪어왔습니다. 주택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는데 제공되는 주택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전세 제도가 활성화됩니다. 집주인은 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족한 주택 구입 자금을 전세자금을 이용하여 융통하고, 세입자는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부담하지 않고 주택의 절반 가격 정도에 주택을 빌려 쓸 수 있었기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보증금이 없어질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월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전세에 대한 선호가 월세보다 높았습니다.
한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은퇴 후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매월 임대수익이 보장되는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자금 대신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도 더욱 다양해지면서 전세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여러분이 집주인이라면 혹은 세입자라면 월세와 전세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08 같은 평수인데 왜 주택보다 아파트가 비쌀까?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도심 어디에서나 마주하게 되는 고층 아파트라고 합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니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수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공동주택 형태의 아파트는 고층화와 함께 주택문제 해결에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건설 경기와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된 1970년대 중반 이후 중산층을 중심으로 아파트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경제적 안정을 갖춘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편 다양한 금융상품의 등장으로 근검절약하여 모은 목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매할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상품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파트는 시세 측정의 용이함 등으로 인해 거래 수요가 늘어나며 점차 안정적인 보금자리보다 효과적인 투자 대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변동하는 부동산 시세 속에서 내 집이 생겼지만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 일상이 더욱 빈곤해졌다는 ‘하우스 푸어’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09 당신은 주주입니까?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는 큰돈이 듭니다. 사업자에게 자금이 넉넉하지 않을 때에는 자금을 빌려야 하는데 돈을 벌면 수익을 나누겠다고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때 투자를 받은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이 약속의 증거로 발행하는 것이 주식입니다. 이처럼 주식으로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회사를 주식회사라고 하고,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주라고 하죠. 주식회사는 회사의 수익을 주식 수에 따라 주주들에게 나누어줍니다. 회사의 수익이 많아질수록 주주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투자금마저 보장받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경제 흐름이나 회사 실적에 따라 주식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은 높은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위험성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참고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고 직접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가 12개 기업의 주식을 상장하며 주식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직접 증권회사에 가서 거래를 해야 했지만 전산화와 홈트레이딩 등을 거쳐 지금은 휴대전화로 해외 주식까지도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어 주식투자 인구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2021년 기준 주식투자 인구는 1,38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0 빚을 사서 돈을 번다?
금융상품 가운데 채권은 일종의 차용증서입니다. 채권은 주식회사는 물론이고 정부, 공공기관, 특수법인에서도 발행할 수 있는데 중장기 자금을 조달하고자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채권을 발행한 기관이 채권을 산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는 구조인 것이죠. 채권 발행 기관은 수익의 발생여부와 관계없이 원금과 함께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채권자 입장에서는 빚을 사서 돈을 벌게 됩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식보다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채권에도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발행기관의 수익 여부와는 관계없이 원금과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발행기관의 신용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시장 금리, 환율 변동 등에 따라 채권 가격이 변동하여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발행기관이 파산하는 경우에도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어때요? 채권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에필로그> 목돈이 이루게 해준 꿈이 있나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번갈아 발생합니다. 이 경기 변동은 정부, 기업과 함께 경제의 3대 주체로 손꼽히는 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경기 변동에 따라 우리가 자산을 축적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죠. 달라지지 않는 것은 때로는 과감한 투자로, 때로는 더 절약하는 방식으로 목돈을 모으려 애쓰는 우리의 노력이 아닐까요?

목돈을 모으는 과정에도 부침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대세를 따르다가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대박 소식에 배 아파한 기억도 있을 겁니다. 금리 변동에 따라 좋았다 나빴다 우리의 표정도 수시로 바뀌고요. 한편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사정에 맞는 경제 활동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개인의 노력, 가계의 노력이 모여 우리나라 경제도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목돈 자체를 꿈꾸기도 하지만 목돈이 이루게 해준 꿈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꿈들을 이루셨나요? 목돈에는 정해진 금액이 없습니다. 용돈, 월급, 매출 등 자신의 소득을 모아 꿈꾸던 무언가를 이루는 데 보탤 수 있었다면 목돈으로 꿈을 이뤄본 것이라 믿습니다. 목돈을 모아 이룰 수 있었던 꿈, 그 과정에서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혜로운 경제생활은 앞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꿈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더 알토란 같은 ‘목돈의 꿈’을 이뤄나가 볼까요?

주요 전시 자료

  • 전시물1
    아사히 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일본의 금고 제작사 아사히에서 출시한 금고. 기증자 박재희는 제일은행의 전신으로 조선저축은행의 행원이었던 조부의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927년 7월 1일 서민금융기관으로 설립된 조선저축은행은 저축예금 업무만 하다 광복 후 1946년 4월부터 시중은행으로 전환됐다. 금고가 있던 가정집이 흔하지 않던 시절 기증자의 집안에서는 이 금고에 부동산 문서나 여러 귀중품을 보관했다.
  • 전시물2
    절미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62 쌀을 절약하기 위해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덜어낸 쌀을 담아 보관하던 절미통은 자산 보관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 전시물3
    삼일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53~1962 1956년 1월 5일 권용학·윤석진·김백두에 의해 작성된 '삼일계' 장부이다. 총 8장으로, 내용은 계의 설립배경, 계원의 이름을 적은 '首題(수제)', 계모임 날짜와 곗돈 이자에 대한 규칙을 적은 '凡例契則(범례계칙)', 1953년 1월 5일부터 1962년 7월 그믐날까지 곗돈의 출납장부로 구성되어 있다.
  • 전시물4
    전라북도 후생복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7 1947년 11월에 전라북도후생복권협회에서 이재민(罹災民) 주택 건축 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발행한 제1회 후생복표로, 복권 1장당 50원에 판매하였다. 앞면에는 복권 회차, 복권 번호, 복권 발행 목적과 추첨일(1948년 1월 10일) 등이 인쇄되고, 발행처명 위에 인장이 찍혀 있다. 뒷면에는 복권 등수별 당첨 방법 및 금액 안내와 지급 기한, 당첨금 수령 방법 등이 인쇄되어 있다.
  • 전시물5
    조정사채증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72 1972년 국무회의에서 의결, 공포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에 의한 특별금융조치의 시행으로 사채조정이 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사채동결조치의 주요 내용은 긴급명령 제32조제1항에 의한 신규대출은 일반상환과 특별상환으로 나누어 정한다는 것, 상환하게 할 금액은 금융자금대출금과 신탁자금대출금을 구분하여 계산한다는 것, 신규대출은 대출한 날부터 3년간 거치하고 그 거치기간의 종료일로부터 5년간에 걸쳐 6월마다 균등액을 상환한다는 것 등이다.
  • 전시물6
    제1회 복금부 건국기념예금증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9 1949년 조선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에서 복권 형태로 발행한 '건국기념예금증서'다. 해방 후 부족한 재원 조달과 연평균 100%가 넘는 물가 상승을 막고자 저축독려 차원에서 등장한 저축과 복권을 결합한 복운예금 1등 당첨자는 10만원의 상금을 받았는데, 당시 고소득군에 속한 목수의 월급이 평균 12.1원임을 고려하면, 688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큰 액수였다.
  • 전시물7
    매미처럼 후회말고 개미처럼 저축하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70년대 재무부(財務部)에서 저축의 날에 저축을 장려하기 위하여 발행한 표어다.
  • 전시물8
    농어촌 1조 저축 저금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70년대 1973년부터 1981년까지 농협상호금융에서 추진한 농어촌 1조원 저축 운동을 기념하여 제작한 저금통이다. 뚜껑에 돈을 넣을 수 있는 홈이 있고, 경첩과 잠금 고리가 달려있다. 뚜껑 상단에 농협 로고가, 앞면에 '농어촌 1조 저축', '부용농협' 문구가 찍혀 있음. 측면에는 '땀흘려 일하고', '쓰기 전에 저축하여', '보람 있게 살아보세' 문구가 적혀있다.
  • 전시물9
    대한교육보험 저금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복 이후 대한교육보험에서 제작한 나무 저금통이다.
  • 전시물12
    외채상환 금모으기 범국민운동 판매위탁증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98 1998년 당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했던 금모으기 운동때 사용했던 판매위탁증서이다.
  • 전시물10
    교육보험 전단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60 교육주기별 교육비와 총 보장액 등이 나와있는 교육보험 전단지다.
  • 전시물11
    잠실 장미아파트 분양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78 서울 송파구 잠실6동에 라이프주택개발이 3차에 걸쳐 1979년에 지은 3,402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분양 안내이다.
  • 전시물13
    격탁과 격탁받침대 한국거래소 1956 1956-1975년 사용했던 격탁받침대다. 당시의 집단경쟁매매는 증권시장의 입회장에서 집단경쟁매매를 할 때 매도측과 매수측을 집합시켜 놓고 개개의 거래원이 자유로운 가격으로 매매거래에 참가하여 매도·매수 가격과 수량이 합치된 순간 딱따기로 약정 가격을 성립시키는 매매 방법이다. 일명 격탁매매라고도 한다.
  • 전시물18
    소액채권 포스터 한국거래소 1970년대 1973년에 재무부에서 발행하여 배포한 소액채권포스터다. 정부는 내자동원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증권시장의 육성에 나섰다. 그러나 1차 경제개발계획의 투자재원 중 절반 이상은 차관에 의존하고 있었고 기업의 자금 조달도 직접금융 비율이 저조했다. 따라서 정부는 1970년대까지 국내 저축을 늘리고 시중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예금자의 이익을 높이는 '금리현실화 조치(1965)', '고금리 소액채권발행'등을 실행했다. 그리고 각종 경조금을 현금 대신 소액채권으로 내자는 '채권생활화 범국민 운동'을 벌였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 전시물14
    주식경매입찰함 한국거래소 1970년대 주식경매 입찰 시 사용했던 함으로 전시된 크기의 함과 3배 큰 사이즈의 함이 같이 사용되었다.
  • 전시물15
    호가표 분류기 한국거래소 1979~1997 1979-1997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가표 분류함이다. 시장대리인이 호가표를 제출하면 포스트 내의 거래소 직원이 종목에 따라 호가표를 분류하는데 사용하였다.
  • 전시물16
    호가표, 호가표 접수기, 호가표 제출시간 기록기 한국거래소 1979~1997 수작업매매시기 증권시장에서 사용되었던 호가표와 호가표 접수기이다. 과거 수작업 매매시의 개별경쟁매매는 시장대리인이 증권거래소가 정하는 양식의 호가표를 매매대에 있는 증권거래소 직원에게 제출하고, 직원은 이를 접수하여 매매체결원칙에 따라 수기로 호가내역을 호가집계표에 집계하여 매매를 체결했다. 매매주문순서 뒤바꾸기 행위를 막기 위해 주문표에 접수시간을 기재, 즉각 증권공동온라인에 입력하고 주문표를 거래소 매매포스트에 제출할 때는 주문순서에 의한 일련번호별 일람표를 작성케하였다.
  • 전시물17
    휴대용 무선증권 단말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00년대 1997년 4월 1일 가정용 투자 시스템 (HTS: Home Trading System)이 도입된 이후 1990년대 말부터 휴대용 무선 증권 단말기를 증권가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이후 PDA를 거쳐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모바일 투자 시스템(MTS: Mobile Trading System)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