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전시실 대한민국의 태동 1876년 ~ 1948년

제1전시실은 개항기부터 광복까지 다룬 <대한민국의 태동> 전시실입니다.

자주적 근대 국가의 꿈과 노력!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

‘대한민국의 태동’에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통해 조선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1870년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1945년 독립에 이르는 시기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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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조선 연해에 서양의 이양선(異樣船)이 자주 출몰하며 통상을 요구했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개항하였지만 이 조약은 일본인 치외법권과 같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개항 후 조선은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문호를 개방한 이후 새로운 생활문화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부와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신식 학교에서 근대 학문을 가르쳤으며, 서양식 건축과 전기, 전화와 전신, 교통 시설, 우편 제도, 금융 제도 등이 도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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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고관들과 지식인들은 외세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자는 취지로 독립문 건립과 독립 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내걸고 독립협회를 창설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명성 황후가 시해당하는 사건(을미사변)을 겪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고(아관파천), 친러파 정권이 성립하였습니다.
    조선의 자주독립과 고종의 환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1년여 만에 환궁한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 수립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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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태극기부터 오른쪽 상단의 김구 서명 태극기, 오른쪽 하단의 광복군 태극기 등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태극기를 한데 모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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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 감찰관인 야스오카에게 써준 친필유묵입니다. 안중근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이며, 저희 박물관에서 맡아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친필유묵은 보물 제5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러일 전쟁 후 영국, 미국, 러시아 등의 열강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승인받은 일본은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습니다(을사늑약).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오늘 목 놓아 통곡한다.’라는 논설을 실어 이를 규탄하였고, 민영환과 조병세는 이에 항의하여 자결하였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내정까지 간섭받는 상황에 이르자 국권 수호를 위해 힘을 기르자는 계몽운동이 일어났으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의병이 봉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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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수탈은 좁고 낮은 통로에 장애물과 침목으로 고난의 역사를 공간에 표현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말과 글, 이름을 빼앗기고 징병, 징용, 위안부로 끌려가야했던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실물자료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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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코너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의 중심사상을 인터랙티브 무빙 텍스트 기법으로 연출하여 3.1운동 정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선언서에 담긴 평등, 공존, 독립, 자유, 평화 등의 중요한 가치들을 깊이 새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독립선언서 원본도 진열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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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국내에서의 민족운동과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등을 실물자료와 보조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영상실은 광복 이전의 옛날 모습과 지금 똑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을 비교하여 역사의 현장감을 더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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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광복’에서는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의 사진으로 ‘숫자 8.15’의 모자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담지 못한 분들은 영상을 통해 사진과 이름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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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 광복 동영상은 광복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입니다.
    두 개의 스크린을 겹쳐서 만든 투레이어 특수영상 시스템을 적용하여, 입체감과 현장감을 부각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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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냉전 속에서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분단을 맞게 됩니다.
    전면의 38선 팻말과 바닥의 38선 표시를 연출하였고, 오른쪽에서는 남한에서의 사태 전개를, 왼쪽에서는 북한에서의 사태 전개를 사진과 실물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제 1전시실 대표자료

서유견문 개항과 근대화의 모색서유견문 / 1895년도
개항과 근대화의 모색
"서유견문(西遊見聞)"은 1895년 출간된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의 서양 기행문이다. 유길준은 1882년 일본에 유학하였고, 1883년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1885년 유럽 등을 거쳐 귀국하였다. 유길준은 해외에서 보고 느낀 것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 등 각종 외국서적을 참고하여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서구의 근대화된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떻게 근대국가를 건설할 것인가를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내용과 그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개화사상을 보급하고 개화운동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최초의 국한문 혼용서로서 문자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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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선포독립협회 보조금 영수증과 안내문 / 1898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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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월 독립협회에서 금구군수 조병식에게 발행한 보조금 영수증과 안내문이다. 안내문에는 독립협회의 설립 취지와 독립문 건립 등의 활동에 대한 소개 및 그것을 위해 보조금을 납부할 것을 당부하며 납부방식을 자세히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 설립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정치사회단체이다.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하는 개화지식층이 한국의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하고 활동하였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 등이 적극 참여하였으며, 협회 발족 당시에는 이완용, 안경수 등 정부 요인들도 다수 참가하였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시정개혁을 주장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독립협회의 활동이 군주제 폐지와 공화제 실시 요구에까지 이를 것을 우려한 고종황제는 1898년 말 독립협회를 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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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선포대한제국 애국가 / 1902년도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선포
1902년 대한제국의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되어 온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가 위촉받아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의 악보이다.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로 시작하는 가사는 민영환이 작사하였다. 악보는 500부를 제작하여 세계 각국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국내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개인 소장 2개의 원본만 전해진다. 특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악보는 표지에 윤치호의 도장이 찍혀있는 것을 볼 때 윤치호의 소장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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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의정원 태극기 / 1923년도
임시의정원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한 태극기로, 등록문화재 제395-1호이다. 임시의정원 의장 김붕준의 부인 노영재가 직접 바느질하여 제작하였다. 마직물에 4괘와 태극문양의 음방과 양방을 오려서 정교하게 박음질한 태극기다 좌측 상단과 하단, 중간 상단과 하단에 묶음 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면에 부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4괘의 위치와 태극의 방향은 현재의 태극기와는 다르지만, 이는 전형적인 임시정부 태극기에서 보이는 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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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상실대한자강회월보 창간호 / 1906년도
국권 상실
대한자강회의 기관지인 "대한자강회월보"의 창간호이다. 대한자강회는 1905년 5월 이준, 양한묵 등이 조직한 헌정연구회를 확대, 개편하여 1906년 4월에 조직한 단체이다. 장지연, 윤효정, 심의성 등 20여 명이 국민교육을 고양하고 산업을 증진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장차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강연회의 개최, 기관지 발행 등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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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억압과 수탈국민총력조선연맹 포스터 / 1940년경
일제강점기 억압과 수탈
일제강점기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발행한 포스터이다. 조선어 사용금지와 창씨개명, 강제징병 등을 추진하면서 “훌륭한 군대로 나가기 위해 국어(일본어)생활을 실현하자”는 내용이다. 이 연맹은 1940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직한 친일단체이다. 조직의 구성은 조선의 모든 단체와 개인을 구성원으로 삼고, 총재는 조선총독, 부총재는 정무총감이 맡았다. 황민사상 고취, 물자 공출, 징병·징용 독려, 신궁참배, 전쟁의식 고취 등을 위한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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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국내 민족운동3·1 독립선언서 / 1919년도
3·1운동과 국내 민족운동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낭독한 독립선언서이다. 독립선언서는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인도주의에 기초를 둔,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독립 방안을 제시하였다. 당초 일본 정부에 한국의 독립을 청하는 건의서로 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강력한 독립의 의지와 당위성을 내외에 선포할 독립선언서로 하기로 결정되었다. 선언서의 초안은 최남선이 작성하였다.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아침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으며,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한용운이 일어나 이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는 학생·시민 등 약 5천명이 모였고, 정재용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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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활동과 해외독립 운동대한민국 임시약헌 / 1927년도
임시정부의 활동과 해외독립 운동
1927년 3월 5일 공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제3차 개정헌법의 현존 유일 국한문 정본으로, 등록문화재 제549호이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 당시부터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고, 1945년까지 5차례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 자료는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김붕준이 소장하였던 자료이다. 이 헌법의 특징은 임시정부의 수반을 없애고, 입법부인 임시의정원을 최고기관으로 선언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한 것이다.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고 주권재민의 원칙을 천명하였다. 다만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하여 “광복 완성 전에는 국권이 광복운동자 전체에 있다"고 부기하였다. 그리고 제2조에서 최고권력은 임시의정원에 있음을 선언하는 한편, 민족유일당이 완성될 때에는 "그 당이 최고권력이 된다"고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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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기쁨과 열망조선건국가사집 / 1945년도
광복의 기쁨과 열망
한국의 전통 문학 장르인 운문과 산문의 중간형태인 가사(歌辭)의 형식을 빌려서 일제강점기의 고난,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 광복의 기쁨과 건국을 위한 노력 등을 표현한 총 18쪽의 소책자이다. “좋을시고 좋을시고 우리조선 좋을시고”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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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설정과 민족분단국내외 동포에게 고함 / 1945년도
38선 설정과 민족분단
1945년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가 국내외 동포에게 보내는 글을 수록한 전단이다. 애국선열들의 노력과 연합군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이했으나, 아직은 건국으로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당면과제를 시행하여 완전한 독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임시정부의 당면과제로 첫째 신속한 환국과 연합국과의 협력, 둘째 과도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 국내 질서유지 및 대외 관계 업무 수행, 셋째 각계각층의 대표들을 소집하여 과도정권 수립, 넷째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매국 행위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 등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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