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다

무지개 너머의 세상

<클래식 음악 속 가족 이야기>

가족은 가깝지만 때때로 멀다. 때로는 큰 위로와 힘이 되고, 때로는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 함께이기에,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을 나눈다.
10월 13일 오후 7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두 자매 성악가는 가족을 테마로 한 공연을 선보였다.
그들이 가을밤에 수놓은 일곱 곡의 노래에는 어떤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까.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자매 성악가가 표현해낸 가족

<클래식 음악 속 가족 이야기>는 성악가 백재은(메조 소프라노)·백재연(소프라노) 자매의 노래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문화공연이다. 공연은 박현진 기획위원의 진행으로 문을 열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날 공연에서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백재은과 노란색 드레스의 백재연 자매는 각기 음역대는 달랐으나 비슷한 음색을 선보였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우리 가족들이 그렇듯 말이다. 자매 성악가이지만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말하는 둘의 얼굴에서는 설렘이 읽혔다.
3층 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사람, 숫자: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와 연계해 열린 이번 공연은 ‘클래식 음악 속 가족 이야기’라는 공연 제목에 걸맞게 가족과 연관돼 있거나, 가족을 떠올릴 수 있는 분위기의 곡들로 채워졌다. 백재은이 부른 첫 곡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삽입곡으로 데릴라가 삼손을 유혹할 때 등장한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 뜨거운 사랑의 기운을 품고 있다. 백재은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삼손은 엄청난 힘을 타고났지만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탓에 많은 문제를 일으켜 가족을 속 썩인 ‘트러블 메이커’였다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선곡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백재연이 바톤을 받아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등장하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불렀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성악곡으로 특히 “O mio babbino caro(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방송 및 공연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대목이다. 멜로디만 보면 달콤하지만, 실제로는 딸이 아버지에게 협박(?)에 가깝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리누치오는 약혼녀 라우레타의 아버지 잔니 스키키를 끌어들여 유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아버지가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기자, 딸 라우레타가 아버지를 설득한다는 것이다. “만약 제 사랑이 허락될 수 없다면 (중략) 강으로 뛰어들겠어요!”라고 외치는 노랫말에서는 가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어 백재은이 부른 조두남의 <산촌>과 백재연이 부른 윤학중의 <마중>은 우리 가곡 작품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나는 가족’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선곡했다. 특히 두 곡에서 백재은과 백재연의 매력이 각기 다르게 표현돼 인상적이었다. 성악가 어머니(정영자)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성악을 시작한 백재은은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힘 있는 소리를 뿜어낸 반면, 이공계 출신으로 뒤늦게 성악을 시작한 백재연은 사랑의 열병을 그려낸 노랫말처럼 섬세하고 곱게 노래를 불렀다. 백재은이 외치는 느낌이라면, 백재연은 차분하게 설득하는 느낌이었달까.
우리 가곡에 이어 두 자매는 외국곡 두 곡을 골랐다. 백재은이 부른 제이크 헤기(Jake Heggie)의 <하늘로 가는 길(A Route to the sky)>은 마치 뮤지컬이 연상되듯 드라마틱한 곡 구성과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백재은은 말썽을 피우는 아이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다수의 오페라에 출연하며 쌓은 내공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백재연은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즈의 마법사> 중 그 유명한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를 불렀다. 가족(숙부, 숙모)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노랫말을 백재연은 순수하면서도 아련한 감성으로 표현해냈다.
마지막으로 두 자매는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에 등장하는 <뱃노래>를 2중창으로 선보였다. 한 무대에서 함께 부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자매의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화로운 화음이 돋보인 마무리이다.

  •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왼쪽)과 소프라노 백재연(오른쪽)이 2중창을 선보이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곳은
결국 가족이기에

노래뿐 아니라 자매의 ‘가족’ 이야기가 공연을 흥미롭게 해줬다. 두 자매는 어머니 역시 성악가로 활동한 데다, 아버지도 음악에 조예가 깊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듣고 함께 나누는 일이 익숙했다고 한다. 특히 누구보다 음악을 듣는 귀가 밝다는 아버지의 조언은 자매에게 큰 힘이 됐다고. 물론 자매 성악가가 이날 공연에서 그려낸 가족은 마냥 행복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일곱 곡의 노래에 등장하는 가족은 때때로 갈등에 휩싸이고 분란을 겪는다. 하지만 <뱃노래>를 통해 자매가 보여준 2중창의 매력이 그렇듯, 가족은 함께일 때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다. 상처받고 다친 영혼은 결국 가족의 곁에서 위로받고 구원을 얻는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시 왕국 오즈(Oz)에서 되돌아와 집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번 공연은 결국 ‘도로시가 꿈꾸던 무지개 너머의 세상은 가족 사이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