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다

우리 곁 보통 영웅들

영웅(英雄)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해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뜻하는 말.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때로는 보통 사람이 해낸다.
누군가는 나라가 어려운 시절에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했고,
다른 누군가는 맨 앞에 나서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들을 기념하는 두 곳을 둘러본다.

역사가 된 그의 질주

손기정 기념관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난 손기정 선수는 16세 어린 나이에 중국 회사에 취직했으나 차비가 없어 신의주-압록강 철교-단둥에 이르는 20여 리 길을 매일 달려서 출퇴근했다. 당시의 경험이 체력 단련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이 많았던 그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13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그중 10번을 우승했고 선발전을 통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선수로 뽑혔다. 그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1위로 골인했으나 웃지 못했다. 그것은 조국의 금메달이 아니었기에.
손기정 기념관은 일제강점기라는 고난의 시대에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하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준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뜻을 기리고 국제적인 스포츠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자 2012년 개관했다.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의숙 건물을 리모델링해 손기정 탄생 100주년에 맞춰 문을 열었다.
지상 1층에는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기획전시실과 교육실 등이 있다. 건물 밖에는 야외전시장이 있다. 우선 제1전시실에서는 손기정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최고의 마라토너로 성장했던 양정고보 재학시절을 관람할 수 있다. 이후 손기정의 애국심을 볼 수 있는 행적과 베를린 올림픽 관련 유물, 금메달리스트 사인북 등을 통해 마라톤 우승의 순간을 볼 수 있으며, 손기정의 우승이 당시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제의 강압에 의해 마라토너의 삶을 멈춘 이후에 그가 선택한 한국 마라톤과 체육 발전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삶까지 살펴볼 수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등록문화제 제489호)인 금메달, 월계관, 우승 상장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손기정이 이룬 마라톤 우승의 의미를 우승 유물들과 함께 중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또한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구간별 기록과 자서전에서 발췌한 경기 당시의 회고를 구간별로 연결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서울시 기념물 제5호, 일장기를 가릴 때 들어 올렸던 묘목)가 당시 양정고보 교정이었던 지금 자리에 심어져(1936년) 현재까지 자라고 있다. 또한 손기정 우승 8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배형경 작가의 손기정 동상, 『상록수의 심훈 작가가 그의 우승에 대해 쓴 시를 새긴 시비(詩碑)도 만나볼 수 있다.
손기정 선수는 향년 90세로 2002년 타계하기까지 조국의 영광을 위해 뛴 영웅이었다. 그의 질주는 곧 역사의 길이 됐다. 손기정 기념관에서는 그의 지난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손기정 기념관 관람정보
관람시간

오전 10시~낮 6시(5시까지 입장 가능)

휴관

신정, 설 및 추석 연휴,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날, 기타 별도로 정하는 휴관일

관람료

상설전시실 무료(기획전시실 및 기타 관람은 문의)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 6-1 손기정체육공원 내

문의

02-364-1936

보통 영웅의 과거와 현재가 한곳에

이한열 기념관

1966년 전라남도 화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한열은 학업성적이 뛰어났으되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생은 아니었다. 문학을 사랑했고 그림 그리는 솜씨도 뛰어난 편이었다고. 1986년 연세대학교 입학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그는 자신이 광주에서 살았으나 잘 몰랐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 6월 9일에 그는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여했고,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해맸다. 그리고 7월 5일 만 20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당시 로이터 통신의 정태원 사진기자는 이한열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교 학생 이종창에게 부축당한 채 피 흘리는 사진을 촬영했다. 이는 중앙일보와 뉴스타임스 1면에 실리며 무력진압의 비정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한열 기념관은 죽음 이후 신화가 된 이한열 열사의 유품을 비롯해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기록을 보존하고 연구·전시해 민주주의 역사를 교육하고자 설립된 박물관이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과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2004년 설립됐고, 2014년에는 사립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이한열 기념관에는 최병수 작가의 <꿈> 솟대가 옥상에 세워져있다. 화단 담벼락에는 김야천 작가의 벽화가, 전시실 입구에는 이경복 작가의 모자이크 벽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기획전시실 3층과 상설전시실 4층을 이어주는 벽면에는 장례식 행렬을 이끌었던 영정그림이 있다. 4층 상설전시실에는 그가 쓰러질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이한열의 연혁, 정태원 사진기자가 포착한 피격 장면 사진, 중·고등학교 시절 유품과 글, 6·10 민주항쟁의 기록물을 만나볼 수 있다. 3층 기획전시실에는 <여기에 잇다>展이 열리고 있다. 기증받은 6·10 민주항쟁 사진은 물론 학생들이 새로운 상상력으로 표현해 낸 이한열과 6·10 민주항쟁 관련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흥미를 끈다. 그 밖에 이한열 열사의 뜻을 기리며 민주주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소용돌이만 아니었다면 이한열은 지금쯤 한 가정의 일원이 돼 아내, 자식들과 함께 단란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한열 기념관은 1987년에 멈췄던 이한열의 생을 이어 보여준다.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보통 영웅의 당시 흔적을 살펴보고 싶다면, 그의 현재를 가늠해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공간이다.

이한열 기념관 관람정보
관람시간

평일 오전 10시~낮 5시(이외 시간은 예약 운영)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12나길 26

문의

02-325-7216

VR기념관

https://my.matterport.com/show/?m=6xM9Xzwmex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