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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노래하는 박물관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우는 우리의 느슨한 연대 <애국가로 떠나는 세계여행>

지난 8월 15일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다목적홀에서 광복절 기념 클래식 토크 콘서트 <애국가로 떠나는 세계여행>이 열렸다. 매년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날을 기념하지만, 그 의미와 애국심을 온전히 되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날 공연은 광복절을 연휴로만 여기던 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깊은 의미를 남겼다. 사진 / 김성재(싸우나 스튜디오)

멜로디와 노랫말로 마음을 울리는 애국가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국가(國歌)를 만들어 불렀다. 노래 선율에는 국가에 대한 믿음과 사랑, 평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흘렀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1896년 배재학당 학도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노랫말을 입혀 국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애국가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당시 국가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위협은 갈수록 거셌다. 사람들은 독립신문 같은 지면을 통해 애국가 노랫말을 투고했다. 애국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동시에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마법’이 필요했다. 멜로디와 노랫말로 마음을 울리는 애국가는 더없이 적절한 수단이 되었다.

지난 15일 열린 <애국가로 떠나는 세계여행>은 ‘애국’을 테마로 한 공연이다. 애국과 민족을 떠올리게 하는 창작곡은 물론 독일과 영국 등의 국가, 그리고 대한제국과 임시정부를 거쳐 현재까지 다다른 우리나라의 애국가도 선보였다.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공연 중간에 등장해 국가와 애국가에 대해 해설했고, 조은아 예술감독(피아노)을 위시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공연단은 빼어난 실내악 연주로 관객 마음의 온도를 높였다. 국제 콩쿠르에서 다수 우승한 세계적인 테너 정의근 상명대 교수는 <청산에 살리라>, <애국가, 겨레의 노래> 등 네 곡을 불렀다. 웅장하고 울림이 깊은 정의근 교수의 노래는 다른 특별전 관람객들의 눈과 발을 붙잡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실내악과 성악으로 표현된 부드럽지만 힘찬 노래

익숙한 가곡 선율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서사로 그린 <하늘과 바람과 별의 노래>가 공연의 문을 열었다. 이어진 <청산에 살리라>에서는 정의근 교수의 목소리에 힘입어 부드러운 서정성과 강한 힘이 함께 느껴졌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러시아 침략이라는 위기에 닥친 핀란드 국민들의 저항정신을 표현했다면 김재홍의 <애국가, 세계유람>은 영국과 미국, 한국 등에서 불리는 다양한 국가(國歌)를 맛볼 수 있는 창작곡이다. <애국가, 겨레의 노래>에서는 독일 작곡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가 대한제국 당시 만들었던 애국가와 임시정부 애국가, 현재 애국가를 차례대로 들려주며 우리나라 애국가의 변천사를 담았다. 아리랑 곡조가 귀에 익숙한 <그리움의 아리랑>이 우리만의 정서를 떠올리게 했다면, BTS의 노래를 기반으로 아이즈원과 트와이스 등의 케이팝을 편곡해 들려준 <Pop Rondo>는 세계에서 그 위세를 높이 떨치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느슨하지만 굳건하게

세계와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1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였다. 억압과 전쟁, 분단 등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우리나라의 역사가 실내악 곡조와 노랫말에 담겨 흘렀다. 그 속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정서는 ‘애국’이다. 우리는 국가를, 그리고 그 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지키고자 저항하며 독립을 외쳤다. 애국가 같은 노래들은 때마다 우리를 달래고 응원하며 힘을 북돋았다.
물론 일상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애국은 굳이 강조되는 사안이 아니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중요한 현 세대에서 애국은 강요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7인조 실내악과 정의근 교수의 노래, 그리고 주진오 관장의 친절하고 깊이 있는 해설은 다양한 개인들의 다름을 인정하되 끝내 하나인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공연이 진행된 시간 동안 관객들은 하나의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우리는 느슨하지만 끝내 끊어지지는 않는 질긴 ‘연대의 힘’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민족과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느슨한 끈은 바짝 당겨지고, 그때마다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실천한다.
본래 애국가는 법적으로 인정된 바 없지만 관습적으로 인정해 주요 행사 때마다 불린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 때, 국가적인 행사가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한 손을 가슴에 대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부른다. 총 4절로 구성된 현재의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이 1936년 작곡한 <한국 환상곡>의 일부분에 노랫말을 입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랫말 후렴구에는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애국가에서 보전(保全)은 ‘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한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자를 쓸 경우 보전(補塡)은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운다’는 뜻이 된다. 대한 사람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보태고 채운다는 것, 느슨하지만 끊어지지는 않으며 서로를 지켜준다는 것.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준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