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근현대사를 만나는 여행

정동길로 떠나는 건축 여행

도시 한복판에서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과 조우한다.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는 특별한 여행을 위해 서울 중구 정동으로 떠났다. 역사 속 인물들이 살아 숨 쉬듯 생생하게 전해지는 역사의 길을 따라 걸어보자.

1 항일 활동의 거점 ‘정동제일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교회인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는 교인뿐 아니라 정동을 찾는 이들의 편안한 안식처이자 사적 제256호로 지정된 소중한 건축물이다. 1885년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지금의 자리에 있던 한옥을 개조해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교인이 급증하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신축했다. 고딕 양식으로 지은 붉은 벽돌의 정동제일교회는 전형적인 서양식 교회를 닮았다. 성단 양옆이 날개처럼 돌출되어 위에서 보면 십자형이었으나 현재는 직사각형이다. 3층 높이의 종탑도 뾰족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고딕 양식을 띤다. 천장은 평평하고, 소박한 생김새의 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개화운동의 중심지이자 민주주의 훈련, 민족의식 고취 등에 공헌한 곳으로도 가치가 높다. 서재필이 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독립협회 전위대를 만들었고, 3·1운동 당시 담임 목사였던 이필주와 장로 박동완이 민족 대표 33인에 참여했다. 교인들은 교회 지하실에서 밤새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를 외쳤으며,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기도 했다. ‘벽돌로 쓴 역사서’라고 불리기도 하는 정동제일교회에는 행동하는 신앙인의 깨어 있는 정신이 서려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길 46 문의 02-753-0001~3

2 언론 수난사의 증인 ‘구 신아일보사 별관’

조선 시대 말부터 서구 열강의 대사관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건립한 학교 등이 자리한 정동에는 이국적인 건물이 많다. 구 신아일보사(新亞日報社) 별관은 1930년대에 미국 싱거 미싱 회사 한국지부로 쓰기 위해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1975년 4층 건물로 증축해 2019년 현재 건재한 모습으로 정동을 지키고 있다. 한자로 ‘신아일보사 별관’이라고 쓴 나무 현판이 눈길을 끄는 이 건물은 ‘구 신아일보사 별관’ 혹은 ‘신아기념관’으로 불린다. 일방향 슬래브 장선 구조, 원형 철근 사용 등 일제강점기의 건축 기법을 적용했으며, 계단을 올라가 내부로 연결되는 출입구는 미국식 느낌이 난다. 외관을 마감한 벽돌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은 근대건축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2008년에 등록문화재 제402호로 등록되었다.
대한제국 관세청, 독일인 외교 고문 묄렌 도르프의 사무실 등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1969년 신아일보사가 사들여 증축한 후 별관으로 사용했다. 자유·중립·공익을 사시(社是)로 창간한 종합 일간지 신아일보는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주도한 언론 통폐합으로 경향신문에 흡수되며 강제 폐업했다. 언론의 자유가 허무하게 사라졌듯 신아일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건물만 고스란히 남았다. 현재 건물 1층에는 신아일보를 기억하는 소규모 기념관이 있고, 나머지 공간은 일반 업무 시설로 사용 중이다.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길 33 문의 02-777-9875

3 대한제국 황실 도서관 ‘중명전’

과거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좁다란 골목길 끝에 중명전(重明殿)이 불쑥 나타난다. 사적 제124호 중명전은 1901년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황실의 서적과 보물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은 황실 도서관이다. 경복궁에 거처하던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덕수궁으로 환궁해 지내던 중 1904년 덕수궁에 큰 화재가 나자 거처를 중명전으로 옮겨 편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의 중명전은 우리나라 궁중에 지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대지 2399m2(727평), 건축면적 877.8m2(236평)의 양식(洋式) 벽돌집으로, 화강석 기단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르네상스식으로 지었다. 1925년 화재로 벽면만 남은 것을 복원해 원래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아치형 창문과 2층 베란다 등 균형미를 추구하는 르네상스식 건축의 특징이 남아 있다.

아름다운 중명전에는 치욕적인 역사가 서려 있다. 1905년 11월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승인도 없이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일본 군대의 무력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은 형식도 갖추지 않은 불법적인 협정이었다. 중명전에서는 덕수궁과 중명전 관련 사진 자료, 을사늑약 현장을 재현한 전시,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대한제국의 특사들을 만날 수 있다.

관람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길 41-11
문의 02-771-9951(덕수궁 관리소)

4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 공사관’

정동길을 걷다가 예원학교를 끼고 돌아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숨이 가빠질 때쯤 흰색 탑옥(건물 옥상에 탑처럼 돌출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사적 제253호 구 러시아 공사관(公使館)이다. 한국전쟁 당시 건물 대부분 소실되고 3층 전망 탑과 기초 유구, 지하 통로만 남았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러시아의 건축 기술자 사바틴이 설계해 조로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1884년에 착공, 1890년에 완공한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2층짜리 벽돌조로 사면에 무지개 모양의 창과 박공을 내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우리에게 아관파천으로 기억된다. 1895년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1896년 고종은 친러 세력의 종용으로 세자와 함께 극비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을 잇는 좁은 비밀 통로(현재 ‘고종의 길’로 복원)를 통해 긴박하게 피신하던 고종 일행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아관파천으로 친러 세력이 득세하고 국가의 주권과 이권이 훼손되자 정부의 대외 의존적 자세를 비난하며 환궁하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고종은 파천 1년 만에 덕수궁으로 환궁해 국호를 대한으로 고치고 대내외적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높은 지대에 들어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은 지 100여 년이 훌쩍 넘은 현재, 고급 아파트와 각국 대사관에 둘러싸여 있지만 N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탁 트인 시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 서면 역사의 무게가 절로 느껴진다.

관람 시간 상시 개방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길 21-18 정동공원
문의 02-3396-5882(서울 중구청 공원녹지과)

5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병원을 찾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에 근현대 건축물이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강북삼성병원과 나란히 선 경교장(京橋莊)은 무심한 이들의 눈에는 흔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은 해방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적 장소로 사적 제465호다. 1938년 금광업자 최창학의 소유였다가 친일 행위를 속죄하며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한 경교장의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으나 김구 선생이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던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했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을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신탁 반대와 건국, 통일 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집결지이자 김구 선생의 사저였다. 중화민국대사관, 월남대사관, 병원 시설 등으로 사용하다가 2010년 복원 공사를 마치고 개장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경교장은 여러 가지 건축양식이 뒤섞인 묘한 건물이다. 1층 창틀은 모더니즘, 2층의 줄지어 선 아치형 창문은 로마네스크 스타일이다. 흑색 지붕은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에서 따왔다. 내부도 재미있다.

벽난로와 클래식한 가구, 카펫을 깔아놓은 서양식 응접 공간이 있고,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일본식 다다미방이 공존한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앉아 있던 창가 유리창에는 평탄치 않았던 우리 근현대사를 상징하듯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강북삼성병원 내)
문의 02-735-2038

참고 사이트. 문화재청(www.ch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top
<역사공감>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전시, 조사·연구, 교육, 문화행사 및 교류 사업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다양한 활동을 전하는 계간 소식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