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역사 만나기

2019 현대사 토크 콘서트

채현국, 나의 청춘 시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대사의 다양한 장면에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혹은 관찰자로 참여한 분들의 증언을 듣고 수집하고 있다. 그중 관람객과 함께 현대사에 대한 증언을 듣는 프로그램이 바로 ‘토크 콘서트: 한국 현대사를 만나다’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4일, 박물관에서는 2019년 첫 번째 현대사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꼰대들에게 속지 말라는 괴짜 노인

그는 백발의 단신이었다. 하지만 해맑은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할아버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롱초롱한 눈은 아직도 호기심과 총기로 빛나고, 몸은 단단한 돌멩이 같은 팽팽한 기운이 느껴졌다. 80대 중반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힘과 재미가 담기고, 입가에는 천연덕스러운 미소가 머물렀다.

2019년 7월 24일 오후 7시, 박물관에서는 ‘거리의 철학자’, ‘건달 할배’로 불리는 효암학원 채현국 전 이사장을 구술자로 모신 박물관 현대사 토크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채현국 전 이사장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노인이다. ‘꼰대’가 될 법한 나이에 꼰대들에게 속지 말라고 젊은이들에게 거침없이 말한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파격이다.

“모든 권력은 썩는다. 이기면 반드시 썩는다. 그리고 ‘옳다’라는 말을 믿지 마라. 뭐든 옳다는 소리는 오류가 있다. 그리고 너희도 노인 세대를 욕하지만, 잠깐 잘못하는 사이에 너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노인을 봐주지 마라. 너희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애써라.”

이러한 파격은 그가 경험한 현대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채현국 전 이사장은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면서 연극반을 만들어 배우를 꿈꿨으나, 얼굴이 받쳐주지 않아 포기하고 중앙방송국(현 KBS) PD로 입사했다. 박정희 찬양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상사의 지시에 사표를 던지고, 부친의 탄광을 맡아 일약 거부가 되었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였지만, 유신 독재 밑에서 재벌로 사는 것이 싫어 어느 날 탄광을 다 정리하고 번 돈을 다 광부들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유신 시절에 쫓기는 민주화 운동 인사를 위해 피난처를 제공하고, 문화 예술계와 출판계의 든든한 비상금 주머니가 되어주었다.

격동의 청춘 시대, 8·15 해방에서 1950년대

채현국 전 이사장의 현대사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1935년에 출생해 8·15해방, 6·25전쟁 그리고 4·19혁명, 5·16군사정변, 유신 체제와 민주화 운동까지 그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했다. 남다른 총기와 드넓은 인맥을 갖춘 그의 기억은 현대사에 중요한 사료가 될 법하다. 이번 토크 콘서트는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친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집중되었다.

채현국 전 이사장은 열한 살에 맞은 해방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형무소에서 나온 이들이야. 일반인은 전부 다 깜짝 놀라서 ‘이게 뭐야?’ 그랬어. 군국주의 시대가 얼마나 끔찍한 거냐 하면, 나라가 망했다는데 좋아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는 해방의 순간에 나라가 망했다는데도 좋아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소년 채현국에게는 자신이 배우고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일본 국군주의에 세뇌당한 식민지 소년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 뒤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기존의 권위를 믿지 않고 남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또 한 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바로 형이 죽은 것이다. 그보다 일곱 살 많은 똑똑한 형이 1953년 7월 27일 휴전되던 그날 자살했다. 그의 형은 휴전으로 영구 분단이 확정되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당시 10대 후반 청소년이던 채현국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고, 형 몫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발노인이 된 현재의 채현국 전 이사장은 형의 자살을 동족상잔 끝에 영구 분단이라는 상황을 맞게 된 민중의 저항이라고 해석했다.

형의 죽음으로 실질적 가장이 된 채현국은 집에서 운영하던 연탄 공장을 맡아야 했다. 그는 여름에 연탄이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썩다가 아이스크림 장사라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결국 한여름 아이스크림 장사는 대성공을 거두어 연탄 공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학비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채현국은 생업에 매달리다가도 답답한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독학으로 7개국어를 읽을 수 있는 책벌레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두꺼운 원서를 읽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썩습니다. 공부를 해야만 덜 썩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식과 그로 인한 신념 체계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머리에 먹물이 많이 들어갈수록 인간은 오만해지고, 또 썩습니다. 지식 자체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어요. 지식은 꼭 확신을 요구합니다. 확신이 허구거든. 확신을 요구하지 않는 지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확신이라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이날 대담을 맡은 이진순 박사의 표현대로 채현국 전 이사장은 ‘격동의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세속의 욕망에 영혼을 팔지 않은’ 흔치 않은 현대사의 증인이다. 토크 콘서트에 참가한 사람들은 채현국 전 이사장이 지나온 격동의 시대를 함께 여행할 수 있었다. 때론 따끔하게, 때론 통쾌하게 현대사 구석구석을 함께 밟아볼 수 있었다.

글. 연구기획과 이경순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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