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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문화(體育文化)』 창간호(제1권 제1호).
자료형태 도서 시대/연도 광복~1950년대 / 1948년 4월 25일
규격 14.7×21.0×0.4
한줄설명 해방 후부터 정부수립 전까지 한국의 체육계를 아우르고 체육의 대중화를 위해 힘쓴 체육전문지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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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동시에 한국의 체육계는 조선체육회를 재건하고(1945.11.26), 체육의 민주화·대중화로 대변되는 신체육 이념을 수용하여 국민의 체력증진과 체육을 통한 국권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해방 후 최초로 발간된 체육전문 월간지는 조선(朝鮮)스포-쓰사(社)에서 발행한 『조선(朝鮮)스포-쓰(1946.2)』로, 2호(1946.10.10)에 실린 조선체육회 회장 여운형의 「조선체육계(朝鮮體育界)의 임무(任務)」라는 글은 ‘민족의 체육을 통한 신생국가를 건설할 일꾼의 육성’이라는 당시 한국 체육계의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 또한 한국 체육계는 체육을 통한 국권 회복에 중점을 두고, 1948년 제14회 런던 하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준비에 매진한다. 먼저 종목별 체육 단체를 설립하고(1945-정부수립이전),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창립하여(1946.7.15.)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얻는다(1947.6.20). 아울러 국내경기대회 개최, 국제경기대회 참가 및 올림픽종목 경기단체들의 국제경기연맹 가입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렇게 올림픽에 대한 열기가 무르익던 1948년 봄, 『체육문화(體育文化)』 창간호(제1권 제1호)는 문교부 체육과 기관지로 발행되었다(1948.4.25).

『체육문화』 창간호에선 먼저 런던올림픽 전까지 국제스포츠계의 동향 및 국민의 관심과 선수들의 노력으로 얻은 한국체육계의 성과들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1939년 스웨덴에서 거행된 ‘링’씨의 기념제입장광경, 런던 하계올림픽 메인스타디움, 1948년 제5회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한국대표선수단 모습과 이효창 선수의 스케이팅 장면, 1947년 필라델피아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2위를 기록한 박동욱, 남수일, 김성집 선수, 1947년 4월, 51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서윤복(우승), 남승룡,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올림픽조선참가공로자인 전경무씨 동생, 이원순씨, 스메르리양의 사진과 하와이에 원정 가는 조선야구단 사진, 상해 원정 축구선수단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체육문화』의 발행 겸 편집을 맡은 이는 체육문화사 대표이며 주간(主幹)인 이병학이다. 이병학은 재건 조선체육회의 초대 이사장 및 각종 체육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는 한국대표선수단의 총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창간사에서 “우리 국민의 몸과 마음을 부단(不斷)히 연마육성(硏磨育成)하는 길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대중적 조직과 과학적 방법으로 하는 체육을 출발점으로 한 강력한 국민운동을 전개실천(展開實踐)함에 있다.”고 천명하고, “해방된 오늘에 있어 우리는 자각분기(自覺奮起)하야 민족적 결함과 병폐(病弊)를 스스로 시정(是正)하고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야 독립전취(獨立戰取)에 매진(邁進)하여야 할 중책(重責)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며 『체육문화』의 창간 취지를 밝혔다.

이병학의 창간사에 이어 민정장관 안재홍의 「체육문화와 민족문화」, 문교부장 오천석의 「스포-츠맨쉽을 함양하라」, 조선체육회부회장 신기준의 「본지(本誌) 발간은 시기에 적절하다」, 전문교부교화국장 최승만의 「건전한 체육장려의 추진대」, 문교부체육과장 김영술의 「체육민중화의 귀감이 되라」 등의 축사가 이어진다. 이들 정치가나 교육자뿐만 아니라 본문 집필진에는 사학계 학자들도 참여하여 힘을 실었다. 이선근은 「스포-츠맨쉽과 화랑도」, 김상기는 「재래조선운동경기의 이것저것」, 이병위는 「올림픽경기의 유래」를 집필하였다. 그 외 본문에는 「런던(倫敦)올림픽참가와 우리의 결의」, 「조선궁도의 사적(史的)고찰」, 「올림픽마라손약사(略史)」, 「뽈껨」, 「국민보건체조해설」, 「체조구령법 및 용어」, 「보건생활지도안」, 「보건과(保健科)교육의 실제」, 「율동체조2종」, 「스포-츠 수필」, 「자전차도로경주」, 「조정(漕艇)」, 「율동과 미술의 관련성」, 「조선체육회임원」, 「올림픽체조경기규정종목」, 「육상남녀오걸표(五傑表)」 등이 실려 있다. 올림픽에 대한 글과 체육교육 및 국민보건체조(1946.8.11. 제정)의 보급 등 국민건강과 체력증진에 대한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체육문화』 창간호는 체육을 통한 문화 발전 및 민족 스포츠의 함양이라는 큰 틀에서 기획·편집되었고, 문교부 체육과 기관지로서 안으로는 체육민중화를 꾀하고, 밖으로는 세계스포츠무대에 진출하여 우리 민족이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길 기대하며 발간되었다. 『체육문화』 창간호는 해방공간의 한국 체육계의 동향과 지향점을 알 수 있는 자료 중 하나로, 해방 후부터 정부수립 전까지 한국의 체육계를 아우르고, 체육의 대중화를 위해 힘쓴 체육전문지로 의미가 있다. 또한 런던올림픽의 보고호(報告號)로 1949년 3월 15일 발행된 『체육문화』 2호와 함께 우리 체육계의 올림픽 개척기 전개과정과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홍윤표, 「해방공간 체육잡지, 『體育文化』에 대하여 ; 민족체육 체질 강화를 향한 잰 걸음」, 『근대서지』 3, 2011, 소명출판, 196-204쪽.
김정, 김종희, 「미군정기 사회체육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인문·사회과학편)』 46(5), 한국체육학회, 2007, 19-30쪽.
임석원, 조문기, 「미군정기 국민보건체조의 제정과 보급」, 『한국체육학회지(인문·사회과학편)』 51(1), 한국체육학회, 2012,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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