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곡물 대량 반출과 극심한 가뭄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은 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02년 당시 주한미국공사였던 알렌(H. N. Allen)은 한국의 경제사정 해소와 관련하여 한국인 노동자 이민을 고종황제에게 건의하였고, 고종황제의 허락으로 같은 해 12월 22일 일본을 경유하여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는 첫 이민선이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하였다. 아울러 외국으로 나가는 이민자를 위한 여행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유민원(綏民院, ‘綏’는 편안하다는 뜻의 ‘수’로 읽히지만 깃발이 늘어진다는 뜻의 ‘유’자로도 읽히고 있으며, 1902년 11월 29일 자 윤치호의 영문 일기에 ‘Yu Min Won’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신설하고, 민영환(閔泳煥)을 초대 총재로 두어 이민자들의 여행권 발급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 자료는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 하와이[布哇島] 이민을 결정한 안재창(安載昌, 1873~1963)이 대한제국유민원(大韓帝國綏民院)에서 1902년(광무6년) 12월 21일에 발급받은 해외여행권이다. 안재창은 미주한인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지원한 제 1세대 미주 이민자이다. 여행권에는 명시된 자의 통행이 자유로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고, 그의 요구가 있을 시 보호 및 원조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데, 좌측에는 국한문 혼용체로, 우측에는 중국어, 영어, 불어로 표기되어 있다. 여행권에는 발급번호(제42호), 주소(경기도 양주군 별비면 식송리), 나이(30세), 여행목적(농업) 등 안재창의 신상과 보증인 안창호(安昌鎬)의 정보가 적히고, ‘대한제국해외여행장(大韓帝國海外旅行章)’과 ‘유민원총재지장(綏民院總裁之章)’ 직인이 찍혀 있다. 또한 앞면 좌측 하단과 뒷면 우측 상단부분에 인천항에 파견된 유민원 위원의 확인 도장이 추가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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