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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판 독립신문 창간호
자료형태 도서 시대/연도 일제강점기(1910~1945) / 1919.8.21.
규격 27.0x35.7x0.5
한줄설명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념과 활동을 전파하고,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소식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상해에서 간행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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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해이다. 2월 8일 동경(東京)에서는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발표하였고, 3월 1일 국내에서는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한일병합조약의 무효,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치며 거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민족의 독립역량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계기가 되어, 그 결과 4월 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국 민족의 독립 이념을 전파하고 국내외의 여러 독립운동 활동, 임시정부 조직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1919년 8월 21일 상해에서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다. 창간 당시에는 사장 겸 편집국장 이광수(李光洙), 영업부장 이영렬(李英烈), 기자 조동우(趙東祐), 출판부장 주요한(朱耀翰) 등이 중심이 되어 신문의 발간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상해판「독립신문」은 그 창간사에서 신문의 발간 목적을 ① 독립사상 고취와 민심통일, ② 독립사업과 사상 전파, ③ 유력한 여론을 환기하고 정부를 독려하여 국민의 사상과 행동의 방향 제시, ④ 새로운 학술과 새로운 사상 소개, ⑤ 국사(國史)와 국민성을 고취 및 개조 등으로 밝혔고, 발행 당시 ‘獨立’이라는 제호(題號)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의 독립 열망과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였다.

  「독립신문」은 창간 이후 발간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신문을 발간하는 데 재정적 어려움을 겪거나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프랑스 조계 당국으로부터 임시정부 청사 폐쇄 조치가 결정되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 정간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적·정치적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신문」은 1926년 11월 30일까지 만 7년 동안 198회 발행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로서 독립군의 활약상, 세계정세의 흐름, 일본의 만행과 침략에 대한 비판, 민족 독립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섰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유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한 자료의 중요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독립신문」은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여러 곳에 소장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2016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상해판 「독립신문」을 수집하고, 영인 및 목록화, 해제 작업을 거쳐 「독립신문」 소장 자료집을 발간하고, 박물관 홈페이지의 디지털 아카이브 「독립신문」의 원문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곧 다가올 2019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한 만큼 상해판 「독립신문」과 그 속에 들어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정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 참고문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독립신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자료집 5, 2016.
이한울, 「상해판 「독립신문」의 발간 주체와 성격」,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8.
호광수, 김창진, 송진한, 「상해판 「독립신문」 所載 한시의 텍스트 분석」, 중국인문과학 제28집, 2004.6. 

*상해판 독립신문 아카이브 시스템:
http://archive.much.go.kr/archive/newspape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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