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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친회(養親會) 한국지부 우편엽서
자료형태 문서 시대/연도 광복~1950년대 / 1950~1960년대
규격
한줄설명 한국전쟁 후 국제구호단체의 국내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양친회의 우편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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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急(급)한 일이 있사오니 母親(모친)의 도장을 가지고 來月曜日(오는 월요일) 十六日(16일)까지 本事務所(본사무소)로 오십시오. 八九年七月十三日付(1956년 7월 13일 부침)”

 

 ‘양친회(養親會)’라는 이름의 단체가 최복순(崔福順) 씨에게 보낸 우편엽서의 내용이다. 양친회는 구호개발 NGO ‘포스터 페어런츠 플랜(Foster Parents Plan)’을 한글로 번역한 이름이다. 이 단체는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에게 음식과 쉴 곳 그리고 교육을 지원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1937년 설립되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 지원 대상을 유럽지역의 전쟁고아와 어린이로 확대하였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발도상국으로 지원범위를 넓혀갔다.

 

국내에서도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전세계 후원국으로부터 전달된 후원금으로 매년 2만 5천여 명의 국내 어린이들을 도와주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소장품인 사진 속 엽서는 기증자 황인덕 씨와 후원 대상이었던 황인영 씨의 어머니 최복순 씨가 양친회 한국지부로부터 받은 우편이다.

 
“인영이 사진이 안 되었으니 곧 다시 와서 사진 찍으십시요. 해 나는 날 오십시오.” (1959년)

 

 황인덕 씨와 동생 황인영 씨는 어머니 최복순 씨가 어떤 경로로 양친회의 후원을 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알지 못하지만, 후원을 받을 당시의 단편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후원금은 황인영 씨의 교육에 사용하였고 그 사실은 양친회로부터 확인받았으며, 학용품이나 비타민 등을 받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 최복순 씨는 황인영 씨를 미국으로 입양 보낼 것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였고, 이후 황인영 씨는 수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여 한국전력에 입사, 36년 간 근무한 후 퇴사하였다. 남아 있던 세 장의 엽서 중 마지막 엽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인영군에 대한 원조는 양친회의 규측(규칙)에 의하여 중지되었기에 통지합니다. 2월부터 원조금이 안 나갑니다.” (1960년)


1972년 양친회는 경제·사회 측면의 낙후지역인 성남(당시 광주군 동부면)에 무료탁아소와 무료진료소 운영을 시작하였고, 1974년 사회복지법인으로 양친사회복지회를 설립했다. 1977년에는 성남시 최초의 종합병원 양친회 병원을 개원했다. 1979년 양친회는 양친사회복지회에 현금 및 모든 재산을 무상으로 양도하고 국내에서 철수하였다. 현재까지 양친사회복지회는 양친회의 정신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법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성남시 사회복지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서 철수했던 포스터 페어런츠 플랜은 1996년 한국이 OECD가입을 계기로 후원국이 되자, 국내에 ‘플랜한국위원회’(플랜코리아) 법인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사회복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자료>

플랜코리아 홈페이지 www.plan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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