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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도화주간 1932년 1월 17일자
자료형태 정기간행물 시대/연도 일제강점기(1910~1945) / 1932년
규격 40.0x53.2
한줄설명 이봉창 의사에 관한 기사가 있는 중국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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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해 임시정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는 중국 상해(上海)에서 활동했다. 상해에는 세계 각국의 공사관이 있어서 임시정부가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에 유리했고, 일제의 탄압과 감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1920년대 중반 이후 국내조직 파괴와 구성원간의 갈등으로 활동이 침체되었다. 게다가 1931년 7월에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만보산(萬寶山) 지역에서 한인(韓人)과 중국인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일본이 조선에서 만보산 사건을 부풀리고 허위로 선전하여, 조선 내 중국인이 습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이 중국에 보도됨으로써 중국에서는 반한(反韓) 감정이 고조되었고, 중국 내 한인의 독립운동은 안팎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부딪쳤다. 그런 가운데 그해 9월에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점령하는 만주사변이 발발했다.
2. 이봉창 의거
 이러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임시정부는 국무원회의를 열어, 중국의 한인에 대한 감정을 해소하고,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항일거사를 행하기로 결의했다. 그 실행을 일임 받은 내무총장 김구(金九)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김구는 첫 거사를 이봉창(李奉昌)과 함께 준비했다. 김구는 그는 한인애국단에 입단시킨 뒤 수류탄 2개를 주고 일본으로 보냈다. 그는 일왕(日王)이 1932년 1월 8일 도쿄(東京) 요요기(代代木)운동장에서 열리는 육군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그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당일 아침 그는 요요기운동장에 갔으나 경계가 삼엄하여 일왕이 궁성으로 돌아갈 때를 노리기로 하고 궁성의 사쿠라다몬(樓田門) 앞으로 갔다. 일왕 일행의 마차가 다가오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가볍게 멀리 던질 수 있도록 만든 수류탄은 위력이 약하여 궁내대신이 탄 마차에 손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3. 이봉창 의거를 보도한 중국 언론
 중국의 신문들은 의거 다음날인 1월 9일부터 그의 의거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청도(靑島), 상해 등에서 발행되던 국민당 기관지 《민국일보(民國日報)》, 남경(南京)의 《중앙일보(中央日報)》 등 각지에서 발행되던 신문들이 의거에 대한 사실적인 내용을 비롯하여, 의거가 중국과 일본에 미친 여파 등 다양한 내용으로 연일 보도기사를 쏟아냈다. 또한 거사의 실패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소장 자료는 중국에서 발행된 신보도화주간(申報圖畵週刊) 1932년 1월 17일자로 이봉창 의거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2면에 이봉창 독사진과 폭탄이 투척된 마차 사진을 게재하고, 그의 이력과 사건경위 및 일본 견양의(犬養毅) 내각이 의거로 인하여 총사직하였다는 내용을 실었다.
4. 이봉창 의거가 가져온 영향
 이러한 중국 언론들의 이봉창 의거에 대한 보도로 중국 내 반한 감정은 사그라들고, 한국과 중국 간의 협력과 연대를 가져오는 데 커다란 전기(轉機)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한 소년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중국현대문학사에서 주목받는 소설가 복내부(卜乃夫)이다. 1932년 남경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는 이봉창 의거 보도를 통해 이봉창과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복내부의 관심은 순간적이거나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고, 이봉창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이후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중경(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여러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는 임정의 활동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신보도화주간(申報圖畵週刊) 1932년 1월 17일자는 이봉창 의거에 대한 중국 언론의 반응과 이로 인한 반향(反響)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자료
박찬승, <한국독립운동사: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역사비평사, 2014.
한시준, 「이봉창의사의 의거에 대한 중국신문의 보도」, ≪한국근현대사연구≫ 36, 2006.
한재은, 「중국 문인 복내부와 한국 독립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7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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