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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헝가리 혁명 60년 기념 특별사진전

자유를 향해 걸어온 길

The Path Taken towards Freedom

기 간 : 2016.11.08 [화] ~ 2017.03.12 [일]

장 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 관 람 료 : 무료
  • 관람시간 : 09:00 ~ 18:00
  • 수요일 및 토요일 오후 9시까지 야간개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관람문의 : 02-3703-9200

전시를 열며 (Opening Special Exhibition)

전시에 앞서 전시 개요를 소개합니다.
60년의 시간을 건너 헝가리 국민들이 보여준 용기 있는 외침과 세계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헝가리 테러하우스박물관과 공동으로 기획되었다. 혁명 당시를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선별하였고 나아가 1989년 체제전환기의 사진도 소개하였다. 적은 자료이지만 이 기록들이 보여주는 헝가리의 현대사는 우리 현대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약소국으로서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 그리고 탈냉전이라는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 온 두 나라이다. 이들은 그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This special exhibition, in collaboration with The House of Terror Museum in Hungary, is designed to reflect 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Hungarian protests, 60 years on. These photos show how Hungary's modern history mirrors Korea's in many ways. We are two small nations, caught between superpowers, fighting to keep our own unique cultural traditions. We are two nations that have pioneered our own destinies through the turbulent years of WWII and the Cold War. Through this exhibition we hope to affirm the history that our modern societies are built upon and rediscover the courage and strength to continue to strive for freedom and democracy.

혁 명 (Revolution)

헝가리의 공산화와 사회주의 동원Hungary Becoming a Communist State and Mobilized of the Socialist Masses
나치 및 파시스트의 지배하에 있던 헝가리는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으로 참전 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헝가리의 패배를 의미했다. 헝가리는 소련군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화의 경로를 걷게 된 것이었다. 이후 소련파 공산당의 국내진입과 함께 국내 공산당은 점차 그 세력을 키워갔다. 결국 1949년, 헝가리는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습득한 라코시 마챠시에 의해 공산정권을 수립하였다.

라코시는 리틀 스탈린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잔혹한 독재자였다. 그의 공산주의 정권은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정권답게 개인 우상화, 불법 고문과 같이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통치술을 동원하였다. 그 중 특징적인 것은 강제 동원과 조직생활이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수시로 공산주의 행사에 동원되었다.
1945년 겨울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진주 | Winter 1945, Soviet Forces Enter Budapest ⓒFortepan, 스탈린, 라코시, 레닌 사진 행진 | Photos of Lenin, Rakosi and Stalin Paraded ⓒFortepan
동유럽의 소요와 헝가리의 동요Disturbance in Eastern Europe and Moves in Hungary
1953년 스탈린 사후 과거 체제 청산을 들고나온 흐루시초프의 집권에 힘입어 동유럽에서는 점차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1953년 동베를린의 반소, 반공 노동자 봉기와 1956년 폴란드 포즈난의 노동자 봉기는 헝가리에도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당시 수상이었던 개혁사회주의자 너지 임레는 스탈린적 통치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계획경제 체제에 입각한 과도한 중공업 우선정책 대신,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공업 활성화 등으로 개혁을 시도하였다.

또한 공산당의 사상 학습을 위한 조직이었던 페퇴피 서클은 점차 지식인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중운동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헝가리 대학생과 지식인의 대명사가 된 페퇴피 서클의 대중 집회는 늘 초만원이었고, 일부 열성적인 참가자는 창틀에 올라 토론회를 참관하기도 하였다.
1953, 동독 베를린 봉기 | Uprising in East Berlin, East Germany, 1953 ⓒdpa Picture-Alliance GmbH, 페퇴피 서클의 지식인 | Intellectuals in Petőfi Circle ⓒMTI
혁명의 불꽃이 점화되다Spark of Revolution Lit
동유럽 각지의 반공, 반소 시위에 호응하기 위해 부다페스트대학교(ELTE) 학생들을 필두로 한 부다페스트의 대학생들이 1956년 10월 23일 동조시위를 벌이면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헝가리와 전통적인 우방인 폴란드는 헝가리가 국난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헝가리를 도와준 폴란드의 벰 장군 동상 앞에 모여 선 부다페스트의 대학생들은 이웃 폴란드의 시위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평화롭게 시위를 진행했다.
부다페스트의 대학생 시위 1 | Demonstrations of University Students in Budapest 1 ⓒMTI, 부다페스트의 대학생 시위 2 | Demonstrations of University Students in Budapest 2 ⓒMTI
평화적 시위와 발포Peaceful Protest and Firing
혁명 초기 시민들은 평화롭게 시위를 진행하였다. 학생과 지식인으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전 헝가리 국민이 참여하는 혁명으로 발전하였다. 부다페스트의 시민들은 스탈린 광장에 있던 스탈린의 동상을 쓰러뜨린 후 목을 떼어내어 자동차에 매달아 시내를 돌아 다녔다. 그와 함께 공산주의를 상징하던 각종 상징들을 철거하기 시작하였다.

평화롭게 시작되었던 시위는 밤이 되면서 점차 과격한 양상으로 변하였다.공산당일당독재철폐,라코시사임,너지임레수상복 귀 등의 구호가 울렸다.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광장으로 모여들어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의사당 맞은편의 국가보위부 청사에서 발포가 시작되었다. 이를 기화로 시위는 무장투쟁으로 변모되었다.
시민 시위대 | Citizens Protesting ⓒFortepan, 목 잘린 스탈린 동상 | Decapitated Statue of Stalin ⓒFortepan
위대한 헝가리 국민들의 승리The Great Triumph of the Hungarian People
10월 24일, 부다페스트 시내로 소련군의 탱크가 진입하였다. 부다페스트 곳곳에서 국가보위부 대원, 경찰들과 시민들 간의 총격전이 시작되었고,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의사당 광 장을경비하던탱크에올라헝가리국기를흔들며너지임레의복 귀와 탈사회주의를 요구하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헝가리를 점령하고 있던 소련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분노는 부다페스트 거리의 상점에 쓰여진 구호 '소련인들은 집으로'를 통해 표출되었다. 시민들은 공산당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비밀경찰이나 보위부원들을 찾아내어 처형하였다.

결국 공산 정권이 물러나면서 임레 너지가 수상으로 복귀하였다. 그는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헝가리의 공산주의 포기,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영세중립화 방안 등을 발표하였다. 혁명 후 혼란스러운 정국 가운데에도 시민들은 질서를 차분하게 유지해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위와 질서 유지 | Peaceful Protest and Maintenance of Order ⓒFortepan, 시민들의 봉기 참여(국회의사당) | Citizen's Protesting (in front of Parliament) ⓒGetty Images
자유의 투사들Freedom Fighters
소련에 의해 강제되었던 각종 공산주의 교육은 역설적으로 시민 군의 저항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강요된 학교 군사 교육은 학생들 이 시민군에 참여하여 저항하는데 핵심적인 역량이 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부다페스트 시내 각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던 퇴역 군인들도 본인들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군에 참여하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승리에 일조한 자유의 투사들에 북한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머 모세 교수의 저서 『헝가리 부 다페스트로!-1956년 헝가리 혁명과 북한 유학생들』에 의하면 당시 헝가리에 유학중이던 북한 유학생들이 소련군 탱크의 진입을 막기 위해 헝가리 시민군이 도로에 비누칠을 하는 아이디어를 주는 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위협을 느낀 김일성이 북한 유학생들을 귀국시키려 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국가로 망명한 유학생들도 있었다.
소녀 전사 셀레쉬 에리카 (15세) | Young Warrior, Erika Szeles (15years old) ⓒGetty Images, 소년 전사 | Young Warrior ⓒTerror Háza Múzeum
짓밟힌 혁명!Revolution Trampled!
헝가리의 이러한 급진적인 조치에 대하여 소련은 10월 31일, 무력 진압을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헝가리에서의 반공혁명이 주변의 동유럽 국가들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1월 4일, 소련군 65,000명이 헝가리로 진입하였다. 소련의 침공에 대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은 아무런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헝가리자유의투사들은자신들의반공봉기에대해전세계가관 심을 갖고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총을 놓지 않았다. 결국 헝가리 혁명은 많은 희생자를 내고 실패로 끝났다. 혁명이 실패하면서 다수의 지식인을 포함한 20만 명의 헝가리인들이 고국을 등지고 떠나갔다. 헝가리 국내에서는 혁명 지도자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과 피의 보복이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탱크와 소련군 장교 | Soviet Tanks and Officers CTerror Háza Múzeum, 희생자 운구 | Conveying the Victims ⓒFortepan
세계를 향한 거대한 울림A Huge Influence on the Outside World
1956년 11월 소련군의 헝가리 침공으로 혁명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헝가리 국민들이 흘린 피는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울림이었다. 1956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헝가리 혁명의 시민군들이 선정된 것을 비롯하여, 미국,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헝가리 혁명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도 이만 섭전국회의장이연세대학교재학중헝가리를돕기위해의용군 을 결성하여 가고자 하였고, 김춘수 시인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를 통해 혁명을 기리고자 하였다.
1956년 혁명과 세계 | 1956 Revolution and the World CTerror Háza Múzeum, 헝가리 혁명 지지시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 Protests in Support of the Hungarian Revolution-Eindhoven, the Netherlands CDutch National Archives

혁명 이후

혁명 이후_1956~1989Post-Revolutionary Era_1956~1989
1956년 혁명 이후 집권한 야노쉬 카다르는 일종의 유화책을 펼쳤다. 1970년대의 냉전 완화 분위기 속에서 혁명 관련자들 수 천 명을 사면하였다. 이 사면에는 헝가리 민주화의 상징인 요제프 민젠티 추기경도 포함되었다. 민젠티 추기경은 혁명 당시의 4일을 제외하고는 23년간을 투옥 또는 주 헝가리 미국대사관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고, 1971년의 사면 이후 로마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였다. 여전히 혁명군과 그 가족들은 감시 가운데 살아갔다. 그러나 헝가리는 공산주의 진영 국가 중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였 다. 1956년의 혁명으로 공산당과 민중은 서로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일종의 타협이 일어났다. 그것은 민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정부도 민중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헝가리의 공산주의는 '굴라쉬 공산주의'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련군 6만명이 헝가리에 주둔하면서, 헝가리 국민들의 자유는 제한되었다.
1956, 민젠티 요제프 추기경 | Cardinal József Mindszenty, 1956 ⓒGetty Images, 1959, 노동절 행진 | Mayday Parade, 1959 ⓒFortepan

자유를 향하여 체제전환의 길 Toward Freedom_The Path Taken to Transition

세계사의 전환점_탈사회주의 혁명Turning Point in World History_ Post-Communist Revolution
1985년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과 개방’을 필두로 사회주의 진영의 분위기가 완화된 가운데, 헝가리 국민들은 변화를 향한 날갯짓을 시작하였다 1989년 3월 15일,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났다. 6월 16일, 너지 임레 전 수상 이장(移葬)을 계기로 헝가리 개혁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높아져 갔다. 결국 공산당 정부는 시민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수용하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1989.3.15) | Protests Requesting Liberalization ⓒMTI, 개혁 시민세력과 공산당의 협상(1989.6.21) | Negotiation between Reformed Civil Society and Communist Party ⓒMTI
새로운 헝가리의 탄생The Rebirth of the Hungary
10월 23일, 33년 전 헝가리 혁명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날, 사회주의를 벗어난 헝가리 제3공화국이 공식 선포되었다. 1990년 자유선거 실시를 통해 헝가리의 신정부가 탄생하였고, 주요 정당 6개가 경쟁하는 초대 의회가 출범하였다. 이로써 헝가리는 과거 중 동유럽의 공산진영 국가 중 가장 먼저 성공적인 의회제도가 정착 된 나라가 되었다. 1956년 혁명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아르파드 괸츠는 새로운 헝가리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와 더불어, 바르샤바 조약기구로 대별되는 소련 주도의 안보 체제에 속해있던 헝가리는 1999년 3월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완 전한 체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헝가리 제 3공화국 출범(1989.10.23) | Proclamation of the Third Republic of Hungary ⓒMTI, 국회 개원식에 참석한 56년 혁명의 주역 중 하나인 아르파드 괸츠 대통령(1990.8.3) | President Árpád Göncz, one of the leading role of 1956 Revolution, at the Opening Ceremony of the Democratic Parliament ⓒMTI
과거 청산Past Liquidation
체제전환은 단순한 사회경제적 제도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과거 헝가리 전역을 뒤덮고 있던 소련군의 동상과 기념물, 공산주의 상징들이 모두 철거되었다. 각 도시의 주요 거리명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공산주의식 이름으로 바뀌어 있던 거리명은 과거 헝가리의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공산시대의 거리이름 교체 | Changing Street Names of Communism Era ⓒMTI
유럽으로의 복귀Return to Europe
1993년 유럽연합(EU)이 출범한 이후, 헝가리는 지속적으로 EU 가입을 타진해 왔다. 코펜하겐 기준(Copenhagen Criteria)으로 대별되는 가입 조건을 맞추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EU 측의 예산 지원등다양한쌍방의노력은2004년5월1일,헝가리의EU가 입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다른 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함께, 헝가리는 1989년에 40년의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체제전환을 이룬 이후, EU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서 명실 공히 '유럽으로의 복귀'를 이루어냈다.
유럽연합 가입 축하 | Celebrating EU Membership ⓒMTI, 유럽연합 가입을 축하하는 시민들 | Citizens Celebrating EU Membership ⓒM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