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n Contempo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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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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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확립 1948년~1961년

제2전시실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과 전후복구', '국민국가 토대구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ㆍ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국민들의 땀과 눈물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과정과 의미, 6ㆍ25 전쟁의 전개과정과 참혹한 실상, 그리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전후 국가 토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또한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된 4ㆍ19 혁명의 의미도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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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국제적 냉전질서 속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갖게 되었으며, 국회의원 총선거도 남한에서만 실시하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에게 최초로 선거권이 부여된 직접⋅평등⋅비밀⋅자유 원칙의 민주 선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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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 총선거로 구성된 초대 국회는 헌법을 제정, 공포했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했으며, 1948년 8월 15일에는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같은 해 12월 유엔으로부터 '선거감시가 가능했던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수립된 정부’로 승인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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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정부수립 후 국가의 기초를 만들어나가던 때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유엔군 참전으로 전기를 맞았으나, 대규모로 참전한 중국군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후 전투는 북위 38도선과 비슷한 전선을 경계로 하여 교착 상태에 빠졌고, 3년여에 걸친 전쟁은 1953년 7월 정전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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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흥남철수 당시 많은 피란민을 실어 나른 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선에 1만 4천여 명의 피난민을 싣고, 거제 장승포항까지 3일 동안 항해를 했으나, 영하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으며,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도 탄생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구출작전은 하나의 배로 가장 많은 인원을 대피시킨 사례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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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이 끝난 후 많은 한국인들의 생활 환경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특히 전쟁의 포화가 집중된 서울에서는 많은 주택이 파괴되었고, 전후 월남민과 이농민 때문에 주택난이 더욱 심각하였습니다. 새 이주민들은 산지나 하천 주변에 몰려들어 판자와 천막을 재료로 판잣집을 지어 거대한 판자촌이 형성되었습니다. 판자촌 주민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강인한 의지와 생활력으로 삶을 헤쳐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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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조약으로 미군 2개 사단이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 배치되어 북한의 재남침을 억제하였습니다. 아울러 휴전 당시 55만 명이었던 한국군이 72만 명 수준으로 증강되었고, 장교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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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출범할 때부터 초등학교 의무 교육제를 택하여 국민교육의 근간을 만들었습니다.
    1950년대 말에는 초등학교 취학률이 96%에 달하였고 여러 학교들도 증설, 신설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축적된 인적 자본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민주화 등 이후 대한민국 성장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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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후의 대중문화는 전쟁의 비극과 이산의 아픔을 표현하거나 참담한 생활 속의 절망과 자조를 주제로 한 것이 많았습니다. 실향과 이별의 아픔, 전쟁의 비참함을 표현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었으며 극장에서는 해외 영화 뿐 아니라 한국의 현실을 다룬 국산 영화도 점차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종합 교양지 "사상계" 등이 많이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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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자동차는 1955년 8월에 생산하기 시작한 첫 국산차입니다. 전쟁 후 파괴된 자동차의 부품을 활용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재생업이 활발하였는데 최무성씨 3형제가 미군 지프의 부속품에 새로 깎아 만든 국산 부품을 결합해서 시발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시발자동차는 1955년 10월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국산품으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택시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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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180여명이 숨지는 유혈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이승만은 사임하였습니다. 국민이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준엄히 심판한 4·19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제 2전시실 대표유물

냉전과 좌우대립(→ 남한 총선 결정)UN한국위원회 환영포스터 / 1948년도
냉전과 좌우대립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발행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환영 포스터이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1947년 11월 유엔총회에서 한국독립의 절차를 규정하는 미국의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정부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9개국으로 구성된 협의체이다. 1948년 1월 8일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8개국의 임시위원단이 입국하여 총선거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포스터에는 8개국 대표의 사진, 1월 12일 덕수궁 회담 장면과 그리고 1월 14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환영회 장면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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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선거와 헌법제정국회의원 선거법 / 1948년도
5․10선거와 헌법제정
미군정에서 1948년 3월 17일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5호로 공포한 국회의원선거법이다. 이 법에서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그리고 피선거권은 만 25세에 이르는 모든 국민에게 인정되었다. 일본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나 일본제국의회 의원이었던 사람에게는 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 법령에서 선거제도는 보통․평등․비밀․직접의 4대 원칙에 입각했고, 선거구제는 1선거구에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였다. 이 법에 의해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이 처음부터 부여되었는데, 이는 성별, 인종에 따른 참정권의 차별이 있다가 점차 확대된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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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정부수립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사진 / 1948년도
대한민국정부수립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하식 사진이다. 광복 3주년이 되는 날에 개최된 이날 행사에서는 태극기 게양식, 이승만 대통령 연설,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가 제창, 만세삼창 등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날 자정 미군정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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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계획된 남침, 6․25전쟁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 / 1950년도
북한의 계획된 남침, 6․25전쟁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오전 4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발표한 결의문이다. 북한군 침략행위의 즉각 중지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결의는 이후 유엔군이 6․25 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낸 계기로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유엔이 집단안전보장 조치로 침략을 제지하고 평화의 회복을 달성하려 했던 최초의 시도로서 세계사적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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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과 피해학도의용군 신고서 / 1950년경
전쟁의 참상과 피해
당시 대학생이던 한 인물이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1951년 1월까지 학도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전했었다는 내용이 적힌 학도의용군 신고서이다. 학도의용군은 1950년 6월 29일 수원에 모인 91명의 학생들이 국방부 정훈국의 후원으로 조직한 비상학도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참전한 학생들은 전투요원 5만여 명, 후방지원요원 20만여 명 등 총 30만여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7천여 명은 군번과 계급도 없이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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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복구와 경제 원조밀가루 구호포대 /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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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전후복구와 경제 원조
  • 2/2전후복구와 경제 원조
미국이 원조품으로 보낸 밀가루 포대이다. 이 밀가루 포대에는 ‘팔거나 다른 물건과 바꾸지 말 것’ 이란 문구가 영문으로 적혀있다. 미국은 자국 농산물의 해외 소비량을 늘리고 대외관계를 향상시키려는 취지로 미국은 밀가루 등 자국의 농산물을 제3세계로 수출하거나 원조했고, 국내적으로 밀가루의 도입은 국내 농업구조와 곡물 소비 경향을 바꾸는 등 여러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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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 경제의 기초 확립한미상호방위조약집 / 1954년도
국방과 경제의 기초 확립
한미상호방위조약문이 실린 책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John Foster Dulles) 미국 국무장관의 서명으로 체결된 이후, 한국 국회와 미국 상원의 동의를 거쳐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이 비준함으로써 1954년 11월 17일부터 발효되었다. 조약문이 실린 책자는 대한민국 공보처에서 발행한 것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전문 외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승만 대통령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의 공동성명 내용 등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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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교육의 실시와 사회문화의 변천바둑이와 철수(국어 1-1) / 1948년도
의무교육의 실시와 사회문화의 변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문교부가 최초로 발행해 학교에 공급한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이다. 이전 교과서와 달리 소리․글자․단어․문장을 동시에 가르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교과서가 발행된 10월 5일은 ‘교과서의 날’로 제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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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4.19혁명 당시 일기 / 1960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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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4․19 혁명
  • 2/24․19 혁명
18세의 나이로 4·19 혁명을 관찰했던 한 여고생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일기장이다. 1959년 8월부터 1960년 8월 27일까지 4․19 혁명 전후의 상황을 기록한 이 일기는 "4․19 혁명과 소녀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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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과 5․16 군사정변제2공화국 당면과제 전단 / 1960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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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제2공화국과 5․16 군사정변
  • 2/2제2공화국과 5․16 군사정변
4․19 혁명 이후 나타난 국정 운영 방향 및 과제와 관련한 주장을 담은 여러 가지 전단들이다. 좌익 이념의 확산을 경계하는 내용, 위정자 가운데 부정축재자를 처단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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