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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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교사를 위한 대한민국 근현대사 학습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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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독립영웅[100편] 각 04:00 내외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소개 영상 중·고등 한국사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운동의 전개 바로가기

온라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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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과목 단원명
일하는 해 1966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6년 한국의 어려가지 모습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통해 역동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반추하는 내용 전시 고등 한국사 대한민국의 발전 온라인전시
대륙에서 해양으로: 1876년 개항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1876년 개항 전후시기 조선의 국내 상황, 세계사적 배경, 구미ㆍ일본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물과 이로 인한 조선사회의 변화 등 전시 고등 한국사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 온라인전시
67년만의 귀향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전사자들의 유품, 사연, 관련 자료를 통해 6.25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가의 전사자 신원 확인 노력 조명 고등 한국사 대한민국의 발전 온라인전시
민이 주인 되다: 1987 민주화 30년 특별전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이후 30년 동안의 민주화 과정을 전시 고등 한국사 대한민국의 발전 온라인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제주4.3사건 관련 사료, 미술작품을 통해 제주4.3의 역사를 전시하고, 인권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계기 마련 고등 한국사 대한민국의 발전 온라인전시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광복에서 정부수립까지 우리 사회가 열망했던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이를 이룩하려했던 의지와 노력을 조명 고등 한국사 대한민국의 발전 온라인전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100주년을 맞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중심으로 전시 고등 한국사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운동의 전개 온라인전시
동포에게 고함 : 안중근 옥중 유묵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2016년도에 수집한 박물관 신소장품(안중근 유묵) 및 안중근의사숭모회 기탁자료(안중근 유묵 및 관련 자료) 등 소개 중·고등 한국사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운동의 전개 온라인전시
아름다운 여정, 영원한 우정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평화봉사단의 창설 배경과 미국의 외교정책, 평화봉사단의 선발과 훈련과정, 주요 활동, 평화봉사단원이 바라본 한국의 변화상 및 단원들의 생활상 등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방송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 특별전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근현대사 속 방송의 역할, 기능,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전시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선거, 민주주의를키우다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1948년 5.10총선거 부터 현재까지의 선거 역사, 새로운 선거문화 등 관련 전시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청년의 초상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시대적 담지자인 청년을 매개로 역사적 기억과 시대 표상 고찰, 오늘날 청년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 마련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한국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적 의미 재조명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안녕! 민주주의 : 평화를 여는 특별 사진전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한국 민주주의의 여정을 전하는 여러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와 현재적 과제를 조명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소리, 역사를 담다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소리를 들으며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들을 새롭게 느끼는 전시 - -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전쟁 포로, 평화를 말하다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정전65주년 기념 6·25 전쟁 포로, 미국NARA 등 해외수집 아카이브자료 공개 전시 고등 한국사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영화의 성장기’라 불리는 195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 관련 소장자료 전시 고등 한국사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소리, 역사를 담다」특별전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소리를 들으며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들을 새롭게 느끼는 전시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평화를 심다 세계를 품다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한국사회발전을 위한 유네스코 기여활동을 전시(유네스코 가입 70주년) 한국사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녹슨 철망을 거두고」특별전 10~20분 (사용자 자유 시청)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비극적 참상과 이후 역사에 미친 영향을 보통사람들의 시각으로 조망하는 전시 특정 교과 관련 없음 온라인전시

온라인 자료해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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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과목 단원명
조일수호조규, 일명 '강화도 조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3페이지 PDF 다운로드
한일회담 2:47 1951년 첫 회담 아래 14년간 실시된 한일회담 관련 자료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6)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6사06-04]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 사회의 전개 [9역12-02]
고등 한국사
동아시아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4] [10한사04-08]
(5) 오늘날의 동아시아 [12동사05-01] [12동사05-02] [12동사05-03]
반공의 사회상 5:56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북정책 중의 하나였던 ‘반공’ 자료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8) 통일 한국의 미래와 지구촌의 평화 [6사08-02]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 사회의 전개 [9역12-04]
고등 한국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3] [10한사04-08]
한국의 자동차 7:17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6)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6사06-04]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2]
고등 한국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5]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제품들 8:02 우리나라 1호 전자제품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6)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6사06-04]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2]
고등 한국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5]
88서울장애자올림픽 포스터 3:18 박물관 소장자료인 88서울장애자올림픽 포스터 소개 영상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2] 동영상보기
고등 한국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6]
가족계획사업 포스터 3:29 1960-80년대에 실시된 가족계획사업 포스터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2)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4사04-05] 동영상보기
중등 사회
역사
(7) 인구 변화와 인구 문제 [9사(지리)07-03], (12) 사회 변동과 사회문제 [9사(일사)12-02]
(12) 근・현대 사회의 전개 [9역12-02]
고등 한국사
일반사회
사회문화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7]
(9) 미래와 지속가능한 삶 [10통사09-01]
(5) 현대의 사회변동 [12사문05-03]
'양친회'를 아시나요? 3:17 양친회 한국지부 엽서를 통해 살펴보는 국제구호단체의 한국활동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6)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6사06-04]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2]
고등 한국사 (4) 대한민국의 발전 [10한사04-03]
임자없는 나룻배 유리원판 2:14 박물관 소장자료인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유리원판 필름 소개 영상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1] 동영상보기
고등 한국사 (3)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 [10한사03-04]
'한글' 창간호 2:23 박물관 소장자료인 조선어학회의 간행물 ‘한글’ 창간호 소개 영상 초등 4~6학년 사회 (4)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 [6사04-04] 동영상보기
중등 역사 (12) 근・현대사회의 전개 [9역12-01]
고등 한국사 (3)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 [10한사03-03][10한사03-04]

현대사현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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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현장기록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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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사업 포스터>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실시된 가족계획사업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가족계획은 저출산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는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고 하는데요.
가족계획사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있는 가족계획 포스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같이 살펴볼까요?

-[뉴스화면]
한때 농촌지역에서는 아기 울음소리 들린지 오래라는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출산문제 심각성은 그 이상인데요, 지난 10년 동안 80조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오히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자막&내레이션]
여러분들께서는 지금보신 뉴스나 기사를 한 번씩은 보셨을 것입니다.

-[화면]
주요국 합계출산율 순위
1위 니제르
73위 이스라엘
125위 북한
142위 미국
220위 한국

-[자막&내레이션]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부터 초저출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2018년 현재에는 출산율이 OECD국가들 중 최하위를 기록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출산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6.25전쟁 이후 1950년대에는 연평균 5~6%dp 이르는 인구증가가 있었으며, 1960년을 전후해서는 베이비 붐 시대였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인구증가가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된다고 보며 인구 억제를 위한 대책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시대별 가족계획 포스터들
포스터1: 행복한 가정은 가족계획으로!
포스터2: 하나 낳고 터울조절, 둘만 낳고 단산하자
포스터3: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포스터4: 둘낳기 운동에 참여합시다

-[자막&내레이션]
정부는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다양한 포스터로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 가정에 아이를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이더니, 1980년에는 마침내 ‘한 자녀 갖기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화면]
포스터. 내일이면 늦으리! 막아보자 인구폭발! - 사단법인 주부클럽 연합회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본부)

-[자막&내레이션]
이 포스터는 1970년대에 제작된 포스터 중 하나입니다.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주부클럽연합회’,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본부’라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인구제한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단체를 동원하는데요, 주부클럽연합회는 1974년을 ‘임신 안하는 해’로 제정하여 임신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출산억제운동을 펼치기까지 했습니다.

출산율의 감소는 정부의 정책 효과와 더불어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다자녀 출산 욕망 감소, 혼인적령기 상승 같은 요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출산율이 계속 떨어져 1990년대에는 1.59명이 되자 1994년 정부는 32년 만에 출산억제정책을 폐기하였습니다.

-[화면]
2005년 포스터: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2010년 포스터: 자녀는 평생선물, 자녀끼리 평생친구
2017년 포스터: 혼자하면 힘든 육아, 함께하면 든든 육아

-[자막&내레이션]
그리고 현재는 아이들이 너무 적게 태어나서 대한민국 전체가 젊은 부부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막]
가족계획사업 제작자: 노영미, 채유진
협조: 연합뉴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양친회엽서>

-[화면]
양친회 한국지부 우편엽서 기증품 사진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양친회 한국지부 우편엽서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황인덕 님이 박물관에 기증하여 소장하게 되었는데요.
양친회에서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리고 편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요?

-[화면]
PLAN INTERNATIONAL 로고

-[자막&내레이션]
양친회는 구호개발 NGO Foster Parents Plan의 한글 명칭입니다. 현재의 이름은 Plan International입니다.
PLAN은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에게 음식, 쉴 곳, 교육을 지원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1937년 설립되었습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 지원 대상을 유럽지역의 전쟁고아와 어린이로 확대하였습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나라들로 지원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한국에서도 195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전 세계 후원국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매년 2만 5천 여 명의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PLAN에서 황인덕님의 어머니 최복순님에게 보낸 엽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요?

1956년의 엽서입니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도장을 가지고 오는 월요일 16일까지 우리 사무소로 오십시오”

1959년 엽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인영이 사진이 안 되었으니 곧 다시 와서 사진 찍으십시오. 해 나는 날 오십시오.”

1960년 엽서에는 또 이런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인영 군에 대한 원조는 양친회의 규칙에 따라 중지되었습니다. 2월부터 원조금이 나가지 않습니다.”

황인덕 님은 양친회 후원받을 때의 기억을 알려줍니다.

-[화면]
황인덕 님의 가족사진
황인덕 님 인터뷰 영상

-[인터뷰]
황인덕 님 – 양친회 한국지부 우편엽서 기증자
어머니가 어떻게 수소문을 해서 양친회라는 기관을 알게 돼서 저의 셋째동생 황인영이를 초등학교 1학년인데 양친회에 가입을 시켰어요. 양친회에서 원조금과 의약품과 학용품과 구호물자가 왔어요. 그래서 셋째 황인영이는 수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그 후에는 한국전력에 입사를 해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세 장의 양친회 엽서와 기증자의 기억 속에서 단편적이지만, 양친회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도움을 받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막]
양친회 제작자: 권지영
협조: 플랜코리아
기증자: 황인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8장애자올림픽>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화면]
포스터 – 88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88서울장애자올림픽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88서울장애자올림픽은 언제 어떻게 시행되어졌고 포스터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같이 살펴볼까요?

-[화면]
포스터 –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자막&내레이션]
2018년 3월, 전 세계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한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여러분, 1988년 여름에도 우리나라에서 패럴림픽이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1988년 서울장애자 올림픽은 패럴림픽 역사상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장애자올림픽은 패럴림픽의 옛 명칭인데요. 1988년 당시에는 “장애자올림픽“으로 불렀으며 현재에는 ”패럴림픽“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원래 패럴림픽은 Paraplegia·Paraplegic과 Olympic의 합성어인데, 이제는 종목과 선수층의 확대와 함께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활동이 가능함을 강조하여 나란히를 뜻하는 Parallel과 Olympic을 합성하여 패럴림픽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화면]
88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 포스터와 개막 및 경기 영상

-[자막&내래이션]
이 자료는 88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 포스터입니다.
1988년 제8회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이어 1988년 10월 15일부터 10월 24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 장애자올림픽 이전 역대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같은 해의 다른 개최지에서 열려왔습니다. 1988년 패럴림픽부터 올림픽 폐막 후 한 달 이내에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도시에서 패럴림픽대회가 개최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후 10월 패럴림픽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1988년 하계올림픽과 장애자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모두 치른 첫 나라가 되었습니다.

-[화면]
곰두리 마스코트와 반다비 마스코트

-[자막&내레이션]
2018년 패럴림픽에 반다비가 있었다면 1988년에는 곰두리가 있었습니다.
곰두리는 두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각자의 다리를 묶고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의 진정한 의미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88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 포스터는 장애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장애인에게는 재활의지와 용기를, 비장애인에게는 편견의 시선을 바꾸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징하였습니다.


-[자막]
<88서울장애자올림픽>
제작: 권지영
자료협조: 대한장애인체육회,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조직위원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제품들>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화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을 담은 영상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전자제품 1호들이 각각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구식 전자제품들이지요. 라디오, 전화기, 텔레비전, 비디오카메라, 세탁기 등이 있습니다. 출시될 때, 온 국민들의 귀와 눈이 번쩍 뜨이게 해 주었던 혁명이었다고나 할까요?

-[화면]
관련 전자제품 사진

-[자막&내레이션]
박물관에 있는 1호 전자제품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라디오입니다. 금성사에서는 1959년 국내 최초 진공관 라디오 모델을 개발하였는데요, 이름을 A-501이라고 하였습니다. AC전기용 5구 라디오 제1호라는 의미입니다. 일부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했고요, 1962년에는 미국 아이젠버그사에 라디오 62대를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금성사의 라디오는 인기가 있어서, A502, A503, A504, A505 같은 라디오 시리즈를 계속 생산했습니다.
라디오 앞에 모여 있는 가족의 모습이 다정해 보입니다.

다음은 텔레비전입니다. 박물관에는 금성사에서 1966년 최초로 생산한 흑백텔레비전 VD-191이 있습니다. 1966년 당시 흑백텔레비전 가격은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6만 8천 원 정도로 고가였지만, 이 텔레비전에 대한 수요가 많아 공개 추첨으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텔레비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온 가족은 물론 동네사람들 모두가 저녁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게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로’ 같은 드라마나 ‘쇼쇼쇼’ 같은 오락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시실에는 다른 1호 전자제품도 많이 있습니다.
먼저 국내최초 자동전화기 금성 GS-1입니다.
1961년에 생산되었는데요, 이 국산 전화기의 성능은 “서독 지멘스 회사 전화기보다 우수하고 미국제 500형 전화기나 일본제 4호 전화기와 비슷하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선풍기도 있습니다. 1960년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선풍기였는데, 금성 D-301입니다. 금성사는 선풍기 설계에 착수한지 2개월 만에 첫 선풍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또한 1968년 금성사는 집안의 공기를 냉각시켜 냉방을 하는 방식의 가정용 에어컨 GA-111을 만들었습니다. GA-111은 창문형 룸에어컨으로 자동 온도조절장치와 회전식 방향조절기를 갖췄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금성사가 1969년 5월 첫 선을 보인 국내 최초의 전기세탁기 ‘WP-181’입니다. 이 제품은 1.8kg의 세탁, 탈수 용량을 갖추었으며, 세탁조는 알루미늄으로 제조되었습니다. 당시 세탁기의 등장은 주부들의 가사 노동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냉장고도 있습니가. 금성사가 1968년에 출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 GR-120입니다. 당시 출시 가격은 8만 6000원(현재 가치 약 320만원)이었습니다. 외제 냉장고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600가구에 한 대 꼴로 소유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197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레인지 RE-7700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39만 4000원이라는 비싼 가격 탓에 국내 수요가 없어 수출에 주력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삼성전자가 1979년에 출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VCR SV-7700S입니다. 삼성전자는 일본, 독일,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VCR을 개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198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 비디오카메라 SV-C820을 생산합니다. 영상 촬영 장치, 음향 녹음 장치가 달려 있었으며, 손잡이가 달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에는 줌 기능이 있었고, 렌즈도 밝아 쉽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SH-100이라는 최초의 휴대전화 47대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중화한 휴대전화 삼성 SH-100S를 1990년에 제작했습니다. 이 전화기는 무게가 450g에 달할 만큼 무거워서 손에 들거나 가방에 넣어 휴대할 때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1호 전자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5층 전시실에서 전자제품 하나하나의 모습을 살펴보세요.

-[자막]
<대한민국 최초 전자제품들>
제작: 이두환, 이선숙
자료협조: 국가기록원,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의 자동차>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자막&내레이션]
요즘엔 자동차가 대중화되어 우리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자동차는 교통체증과 더불어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자동차는 제법 윤택한 삶을 사는 가정에서도 쉽게 소유할 수 없는 부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최신식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소유했던 자동차들은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의 생활에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화면]
시발자동차 사진

-[자막&내레이션]
국산엔진을 장착하여 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하게 된 자동차는 1955년 8월에 생산된 ‘첫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발자동차’입니다.
시발자동차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지프차의 부품과 드럼통을 펴서 외형을 만든 조립식 4기통 지프형 승용차로, 당시에는 철판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수작업으로 철판을 두드려 자동차 모형을 잡았다고 합니다.
1955년 10월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대량생산을 위한 시설을 갖추었고, 1963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약 3천대가 제작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1958년 9월 14일 열렸던 시발자동차 행운추첨대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발지프차는 1957년 시발 세단의 생산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사진은 시발 세단의 시승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당시 상류층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시발계’가 성행했다고 합니다.
하동환자동차 제작소 역시 1955년 대형 상용차 개척을 위해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공업의 발흥은 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1954년 15950대에 그쳤던 자동차 보유대수는 1년 만에 3000대 가까이 늘어났고, 1956년에는 25000대가 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절반이 넘는 58.6%가 운행 거리가 긴 영업용 자동차여서 휘발유 소비량이 급증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고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그 결과 “1957년 5월 8일 현재의 자동차 등록대수 28933대를 넘지 않도록 자동차 수를 통제한다.”는 내용의 5.8조치가 발동됩니다.
5.8조치 이후 휘발유 대신 무연탄을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게 되었고 1959년 9월 디젤엔진을 장착한 시발차가 나왔으며, 1962년 4월까지 3100여 대의 디젤엔진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면,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를 몇 대만 소개해 볼까요?

-[화면]
코티나 사진

-[자막&내레이션]
이 자동차는 1968년에 현대자동차 1호로 생산된 코티나입니다.
1967년 12월에 현대자동차가 설립되면서 1968년 2월에 유럽의 포드와 기술, 조립, 판매 관련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화면]
기아 3륜 트럭 T-600 사진

-[자막&내레이션]
이 자동차는 1969년에 기아산업이 일본 동양공업사와 기술제휴로 생산한 경소형 3륜 트럭 T-600으로, 국내 용달운수업의 효시가 된 차량입니다.
1974년까지 총 7726대가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전국에 3~4대 정도만 남아 있으며 2008년 8월에 등록문화재 제40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차량 지붕 위에 스페어 타이어를 장착한 것이 이채롭네요.


-[화면]
브리사 S-1000 사진

-[자막&내레이션]
이 자동차는 1974년에 수립된 정부의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안‘에 대응하여 기아산업에서 생산된 스페인어로 산들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브리사 S-1000입니다. 당시 일본 동양공업의 패밀리아 프레스토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최초로 985cc 국산엔진을 장착한 승용차로 국산화율을 1975년에 80%로 향상되었습니다.


-[화면]
포니 사진

-[자막&내레이션]
이 자동차는 1975년에 생산되기 시작한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입니다. ‘조랑말’이라는 뜻을 가진 포니 자동차는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했습니다. 4단 수동변속기를 얹은 첫 독자모델로써 세계시장에 현대는 물론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첫 번째 모델입니다.
판매 첫 해인 1976년에는 1만 726대가 팔려나가 국내 승용차 시장의 43.6%를 점유하면서 단번에 인기차로 떠올랐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창업한 지 10년째인 1976년에 중남미 ‘에콰도르’에 7대를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에 해치백형의 다목적 5도어 승용차로 개발된 포니2가 나올 때까지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30만 대 생산을 돌파하였습니다.

최초의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60여 년의 긴 시간이 지난 현재, 자동차는 더 이상 부의 상징물이 아닌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휘발유만을 연료로 사용하던 시절을 지나 디젤, 하이브리드, 수소전기 등 새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들이 등장하여 도로 위를 달리게 될까요?

 

-[자막]
<한국의 자동차>
제작: 이두환, 이선숙
자료협조: 국가기록원, 연합뉴스,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일회담>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1951년 첫 회담 이래 14년간 실시된 한일회담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있는 자료들을 통해 한일회담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일회담에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문제, 어업·평화선, 재일한인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 등의 의제가 다뤄졌습니다.
군사정부는 경제개발 재원을 확보하고 한반도 안정화를 위해 조속히 회담을 타결하려 하였습니다. 일본도 1950년대 말에 이르면 ‘한일 관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국교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대한 일본의 협력을 얻기 위해 회담을 서두르고자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항한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강화를 위해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1962년 11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이 총 6억 달러의 청구권 해결 원칙을 비밀리에 합의하였습니다. 그 후 1964년 3월에 정부가 한일국교 정상화 방침을 밝히자 야당과 대학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3월 24일에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졌으며, 이후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65년 6월 협정체결 직전 ‘3.24’ 1주년을 맞이하여 송철원이 ‘격문’을, 김지하가 ‘3.24 제2선언’을 작성하여 발표합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회담은 1965년 6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체결되었습니다.
1951년 10월 20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14년간 총 7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일회담은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불충분한 사과,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현재까지 남겨놓고 있습니다.


-[자막]
<한일회담>
제작: 노영미, 채유진
자료협조: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임자 없는 나룻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현대사 길라잡이

주제 : 이달의 소장자료(3월) –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유리원판 필름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인 유리건판을 소개하며 독립운동 시기의 영화 검열과 영화 속에 담은 독립에 대한 애국심을 소개한다.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유리원판 필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 초창기 영화 제작자이자 배우인 ‘나운규(羅雲奎, 1902~1937).

나운규는 <아리랑(1926)> <풍운아(1926)>, <들쥐(1927)>, <금붕어(1927)>, <잘 있거라(1927)>, <옥녀(1928)>, <사랑을 찾아서(1928)>, <벙어리 삼룡(1929)>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고 배우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단성사(團成社) 운영주의 후원으로 ‘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하고 활동했으나, 이후 회사는 해체되고 그는 일본으로 떠납니다. 1932년 한국으로 돌아온 나운규는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나운규가 출연한 <임자 없는 나룻배>는 ‘이규환(李圭煥, 1904~1982)’의 데뷔작인데요

첫 상영부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동아일보에서 근무하던 주요섭의 평으로 인해 총독부의 검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후 상영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신인감독 이규환과 제작자 강정원, 배우 나운규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38년 11월에 조선일보가 주최된 한국 최초 영화제이자 청룡영화제의 전신인 ‘제 1회 영화제’에서 무성영화 베스트 10에 2위로 선정되는 쾌거를 누렸습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임자없는 나룻배>의 11점의 유리원판 필름에는 영화 타이틀과 촬영장 모습, 배우와 제작진들의 기념 촬영, 영화 장면 및 주연 배우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독립에 대한 대한 강한 민족적 의식을 내포하여 좋은 작품을 제작한 이규환, 그의 강한 애국심이 있었기에 일본의 혹독한 검열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유리원판 필름

제작 권지영

자료협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동아일보

한국영상자료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현대사 길라잡이

주제 : 이달의 소장자료(10월) – 한글 제1권 제1호 창간호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한글의 소중함을 지켜온 조선어학회의 간행물 ‘한글’을 소개한다.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어학회 기관지인 ‘한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930년대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훼손하기 위해 한글말살정책을 실행했는데요,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의 소중함과 한민족의 정신을 이어주기 위해 1932년 5월 1일, 잡지 ‘한글’을 창간하게 됩니다.

지금의 한글학회는 주시경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 등을 거쳐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대의 요구에 맞후며(맞추며) 본회의 사명을 다 하고저(하고자) 하여 이 「한글」 잡지를 내게 된다. 이로써 우리 한글의 정리와 통일이 완성하는 지경에 이를 것을 믿는다.’ 조선어학회의 이윤재가 1932년 ‘한글’을 재창간한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철자법에 대한 본지의 태도

-한글을 처음 내면서 <이윤재>

-조선어법의 초보 <최현배>

-철자법 통일문제를 앞에 놓고 <이당춘>

-우리 글씨는 한 끝으로 맞히자 <이만규>

-조선어 사전 편찬에 대하여 <이극로>

-피히테의 언어관(上) <김선기>

-만일 신문 기사를 내가 쓴다면 <이갑>

-「傳言吐」와 日文 직역적 오류 <이호성>

-조선말의 새말 <한글쟁이>

-새 봄 (시조) <가람>

-석가탑의 내력(전설)

  • 조선어학회 규칙
  • 조선어학회 중요일지
  • 회원 소식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어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의지때문이 아닐까요?

<한글 제1권 제1호 창간호>

제작 권지영

자료협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일회담>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자막&내레이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1951년 첫 회담 이래 14년간 실시된 한일회담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있는 자료들을 통해 한일회담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일회담에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문제, 어업·평화선, 재일한인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 등의 의제가 다뤄졌습니다.
군사정부는 경제개발 재원을 확보하고 한반도 안정화를 위해 조속히 회담을 타결하려 하였습니다. 일본도 1950년대 말에 이르면 ‘한일 관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국교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대한 일본의 협력을 얻기 위해 회담을 서두르고자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항한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강화를 위해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1962년 11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이 총 6억 달러의 청구권 해결 원칙을 비밀리에 합의하였습니다. 그 후 1964년 3월에 정부가 한일국교 정상화 방침을 밝히자 야당과 대학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3월 24일에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졌으며, 이후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65년 6월 협정체결 직전 ‘3.24’ 1주년을 맞이하여 송철원이 ‘격문’을, 김지하가 ‘3.24 제2선언’을 작성하여 발표합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회담은 1965년 6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체결되었습니다.
1951년 10월 20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14년간 총 7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일회담은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불충분한 사과,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현재까지 남겨놓고 있습니다.


-[자막]
<한일회담>
제작: 노영미, 채유진
자료협조: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반공의 사회상>

-[자막]
본 영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길라잡이가 제작한 것입니다

-[화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인 위원장의 악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자막&내레이션]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게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남과 북의 평화의 염원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화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을 담은 영상

-[자막&내레이션]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된 이래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다른 체제 하에서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북정책 중의 하나였던 ‘반공’에 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중심으로 ‘반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각각 미국과 소련의 군정 하에 있게 되었으며, 각기 다른 이념과 체제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공산당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선전포고조차 없이 기습적으로 남침하였습니다.
당시 국군은 불과 3일 만에 낙동강 전선으로까지 무기력하게 밀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며 민족적 비극인 6.25전쟁을 겪었고 3년 후 정전 회담으로 나뉘어진 남과 북은 현재까지 이릅니다.

6.25전쟁 후 1970년대까지 ‘반공’은 대한민국의 국시가 되었습니다.
‘반공’은 6.25전쟁 이후 30년 넘게 한국인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었으며, 수많은 반공 관련 내용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화면]
반공독본 교과서 및 포스터

-[자막&내레이션]
먼저 반공독본입니다.
이 책은 1954년에 출간된 초등학생 교육용 반공독본 교과서입니다.
6.25전쟁 이후 초등학교 학생들의 반공교육에 사용되었습니다.
구성은 갑자기 쳐들어온 괴뢰군, 피난길, 평양을 찾은 날, 이북을 빠져 나온 명수네, 오랑캐를 잡은 명수, 괴뢰군과 싸운 젊은이, 방공호 속의 괴뢰군, 언제나 배고픈 이북 농사꾼, 목숨을 빼앗긴 아저씨, 풀려 나온 포로들, 붉은 스파이 등 총 11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포스터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들어와 몰래 뿌린 삐라를 신고할 것을 권유하는 포스터입니다.
이와 같은 선전물은 우리 사회 내의 반공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삐라를 주워서 방첩함에 넣도록 했고 경찰서나 학교에 가져가면 공책이나 연필, 지우개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화면]
반공 관련 배지, 표찰

-[자막&내레이션]
이 표찰과 배지(badge)는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말자는 취지로 간단한 문구나 표어 등을 새겨 가슴에 부착한 각종 표찰과 배지입니다. 반공 방첩 표찰 외에도 학생들의 이름표에 ‘반공 방첨’을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노랫말에도 반공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국민방첩연구소가 1970년대에 제작한 방첩 관련 노래입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파한 간첩을 국민들이 적극 색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화면]
학생들의 교련 교육 모습을 담은 영상

-[자막&내레이션]
이 옷을 보신적이 있나요? 이옷은 1970년대에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입었던 교련복입니다. 그 당시 학생들은 이 옷을 입고 주 1회 가량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반공웅변대회도 있었습니다. 반공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고 애국심을 장려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반공웅변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에게 시상하였습니다. 또한 1956년 10월 15일에 아시아 반공청년학생대회를 개최하였고 1956년 11월 23일은 반공학생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가 항상 대치 상황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남북이 교섭을 하게 되면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성명, 개성공단 설치 등으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등으로 인해 우리 국군 측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여러 번 터지자 남북 관계에 긴장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화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

-[자막&내레이션]
2018년 현재 남과 북은 평화로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하루 빨리 남과 북에 평화가 오고, 이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자막]
<반공의 사회상>
제작: 이두환, 이선숙
자료협조: 국립민속박물관, 국가기록원, 연합뉴스, 눈빛출판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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